임지현 염운옥 | 비교역사문화연구소
516쪽 | 2010년 2월 26일
휴머니스트 펴냄
대중독재 시대 여성들은 어떤 삶을 살았을까?
나치, 러시아 소비에트, 프랑스 비시정권, 중국의 문화혁명 시기 등 20세기는 파시즘의 시대라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우리가 아는 파시즘 국가는 국민을 독재체제의 희생양으로 동원한다. 여기서 여성은 더욱 수동적인 존재로 한층 더 억압된 존재로 기억된다. 하지만 파시즘 시대를 살다 간 여성의 삶은 정말 그러했을까? 《대중독재와 여성-동원과 해방의 기로에서》는 이 물음에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한다. 대중의 역할을 단순히 희생자로만 볼 수 없으며, 대중의 열광적인 지지를 끌어낸 독재체제는 대중의 적극적인 참여 없이는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대중 역시 정치적 주체로서 독재제체에 자신들의 의지를 가지고 참여했으며, 그 의지는 결국 독재체제를 구성하는 것이었으며, 또 그 안에서 갈등하고 고민했다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이다. 파시즘 시대 대중들의 모습을 단순히 희생자-공범자의 이중적 논리로 말할 수 없다.
이 점은 그 시대를 살다간 여성 역시 다르지 않았다. 그렇다면 특히 여성에 주목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여성들 역시 일반 대중의 모순적 모습과 다르지 않다. 하지만 파시즘하 여성들의 참여는 다른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다. 많은 여성은 파시즘 사회에서 처음으로 사회적 일자리를 갖고, 투표권을 얻었고, 정치에 참여 했으며 또 여성 해방과 평등의 기반을 얻었다. 이 점은 파시즘 이전 사회에서 남성들만이 쟁취할 수 있었던 점이다. 〈착취와 자기세력화 사이에서 : 스탈린주의와 협상을 벌이는 소비에트 여성〉을 보면, 여성들은 소비에트 사회에서, 트랙터 운전사, 비행 조종사 같은 남성들의 영역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동시에 여성은 전통적인 여성상이라 할 수 있는 모성이나 가사 책임자의 역할을 강요받는다. 폴란드 우지 노동자의 경우를 보면, 사회적 참여 역시 가사의 연장선에서 이루어진다. 일터는 가사 공간의 연장으로 그 안에서 부족한 복지 문제를 해결해야 했으며, 비시 정권하에서 여성들은 순수혈통 이데올로기로 X출산이라는 독일군과 혼혈아이의 비밀 출산을 강요받는다. 이러한 점 역시 독재 하 여성들의 삶이 대중 일반과 다른 또 다른 층위에서 이뤄졌다는 것을 말해준다.
즉 대중독재 아래, 여성들의 삶은 희생자와 공고자 사이를 오가는 모순적인 모습이 일반 대중과 다르지 않지만, 그 안의 구체적인 모습을 보면 일반 대중보다 더 큰 층위의 해방과 억압 사이에서 갈등하게 된다. 처음 만나는 사회 참여와 그 안에서 더욱 정교하게 구축되는 구시대 여성 이데올로기의 강요는, 남성으로 대변되는 일반 대중보다 더욱 극명하게 체제와 그 안에 여성의 삶의 모순을 드러낸다. 즉, 젠더적 시각에서 대중독재를 바라보는 것은 대중독재 사회의 모순적이고 중층적인 구조를 더 명확하게 드러내며, 그 안의 대중의 삶을 더 드라마틱하게 재구성하는 것이다.
트랜스내셔널 역사의 관점에서 대중독재와 여성의 관계에 대한 연구사를 보면, 각각의 사례가 갖는 역사적 개별성을 넘어서는 일정한 경향성이 존재한다. 과도한 일반화를 무릅쓰고 이야기한다면 무기력하고 수동적인 희생자에서 적극적으로 능동적인 행위자로 여성의 역사적 이미지가 바뀌고 있다는 것이다. 역사적 행위자로서의 여성에 주목한다는 것은 남성 중심의 젠더 식민주의적 시선에서 벗어나 여성의 행위주체성을 복원하는 것이기도 하다. 여성의 행위주체성을 복원하는 순간, 여성의 정치적 존재성은 독재의 무고한 희생자에서 적극적 공범자 혹은 최소한 소극적 동조자로 뒤바뀌게 된다. 여성 역시 대중의 자발적 지지와 참여의 대중독재체제를 구축하는 정치적 주체로 등장하는 것이다. 이 책에 실린 대부분의 논문들은 주로 독재 체재 아래 여성들을 다루고 있지만, 단지 여성의 역사를 쓰는 것이 이 책의 목적은 아니다. 또한 남성 중심의 역사적 서사에 여성들의 삶의 흔적을 더하려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이 책의 기획의도는 성의 차이를 어떻게 인식하는가에 따라 사회적 관계를 구성하는 방식이 달라진다는 관점에서 대중독재에 대한 젠더사적 분석을 시도한다는 데 있다. 더 구체적으로는 남성 대 여성, 공과 사, 페미니즘과 반(反) 페미니즘, 가해자와 희생자, 독재와 민주 등의 관습적 이분법을 해체하고, 젠더 정체성이 계급이나 인종, 민족 정체성 등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어떻게 형성되는가를 전 지구적 규모의 폭넓은 비교사적 관점에서 파헤치는 것이다.
― 본문 17~18쪽, 〈서문〉에서
젠더적 프리즘으로 재구성한 대중독재 시대의 사회
대중독재 연구는 이제 어느 정도 알려진 담론이다. 하지만 대중독재는 그동안 대중을 동일한 틀 안에서 해석하고 연구했다. 그 안에서 차이에 주목하기 시작한 연구가 네 번째 책인 《대중독재와 여성》이라 볼 수 있다. 이 책은 파시즘 국가에서 여성의 자발적 참여를 고찰하면서, 파시즘 사회가 이룬 절반의 ‘여성 해방’에 주목한다. 이 지점은 그 이전의 일방적 희생자 담론이 여성을 수동적으로 만든 또 하나의 이론일 수 있음을 지적하고, 파시즘은 분명 당시 여성들의 사회참여 요구를 일부분 받아들였으며, 또 이 지점은 파시즘 자체를 다시 볼 수 있다. 젠더 관계를 통해 파시즘 국가의 권력관계를 재구성할 수 있으며, 파시즘 체제가 대중과 관계 맺은 현상을 더 내밀하게 보여준다. 동시에 파시즘 체제가 왜 대중에게 매력적일 수 있는지, 그 매력이 왜 한계점을 안고 있는지, 그리고 그 모순 사이에서 중층적인 정치적?사회적 관계를 드러낸다. 이러한 젠더적 분석을 통해 파시즘 역시 근대적 현상일 수 있다는-그동안 용납하지 못했던-사실을 더욱 명확히 드러낸다.
젠더정치에 국한해본다면 남성과 여성의 성별 분업에 대한 전통적 생각이나 관습들이 각 나라마다 서로 다른 젠더정치의 양상을 낳기도 했다. 국가 권력의 대상인 동시에 주체적 행위자였던 젠더화된 개개인들이 국가 권력 또는 다른 행위 주체들과 맺고 있는 정치적?사회적 관계들, 젠더화된 시민들 상호간에 벌어지는 정치적 역관계, 젠더화된 시민과 이들을 동원하려는 국가 사이의 협상과 긴장 등 복합적인 그림들을 젠더라는 초점을 통해 이해하고자 하는 것이 이 책의 목적이다.
― 본문 19쪽, 〈서문〉에서
좌우파 독재를 넘나드는 시각으로 복원한 여성의 생생한 삶
이 책은 독일, 프랑스, 소비에트, 이탈리아, 폴란드, 스페인, 중국, 일본, 한국(식민지 시기)의 파시즘 시대를 넘나들며 비교사적으로 대중독재 아래 여성의 삶을 고찰한다. 좌파독재와 우파독재 국가를 넘나드는 비교사적 고찰과 한 국가 안에서도 대중독재에 참여한 여성의 삶이 하나가 아닌 다양성 속에 있음을 알 수 있다. 대중독재 아래 여성들의 삶이 희생자-동조자 이분법적 틀에 가둘 수 없고, 그 안의 모순과 갈등 속에서 다양한 층위를 구성했음을 생생한 일상을 통해서 만날 수 있다.
〈미국인 여성 메리 레더의 눈에 비친 스탈린 체제 여성의 일상〉을 보면, 미국인 출신 메리 레더의 소비에트하에서 삶은, 사회주의하에서 해방과 동등한 여성이라는 꿈에서 한계를 절감하는 과정으로 바뀌어감을 보여준다. 특히 그 과정에서 유태인으로 인종차별의 벽을 절감하며 결국 미국으로 망명으로 ‘소비에트의 꿈’을 접는다.
〈복지국가에서 자기복지로 : 여성 섬유노동자들의 일상적 저항, 우지 1971~1981〉은 폴란드 여성들의 사회참여가 어떤 식으로 다시 모성 이데올로기로 점철되는지 보여준다. 여성들의 직업은 대부분 경공업에 한정되었으며, 직업은 가정의 연장으로 생계의 최후의 수단이자 식량을 배급받는 공간으로 전락한다. 경공업은 복지의 우선 대상에서 제외되어 스스로 복지를 찾아 나설 수밖에 없는 동구권 여성의 삶을 보여준다.
〈제국의 어머니 : 식민지 후기 전시 체제의 일상과 여성들의 징병제 담론〉은 식민지 조선에서 일본 군대로 징병된 조선 군인의 어머니와 아내들에게 남성들의 임무가 부과되었는데, 이러한 역할은 여성의 사회참여를 이끌었지만, 그것은 결국 여성에게 일제에 대한 충성을 요구하는 과정이 되었음을 분석한다.
이 밖에도 다른 14꼭지의 글을 통해, 좌우 파시즘 국가들에서 여성들의 삶이 어떻게 중층적으로 구성되었는지 일상의 탐구와 사회적 분석을 통해 내밀하게 다루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