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도 한양대학교 비교역사문화연구소가 선정한 제1회 "국경을 넘는 어린이·청소년 역사책" 총심사평
한양대학교 비교역사문화연구소는 어린이·청소년 역사책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2014년부터 매년 "국경을 넘어서는 어린이·청소년 역사책"을 선정하여 시상하기로 결정하였으며, 올해는 2013년 1월1일부터 10월 31일 사이에 출간된 도서를 심사 대상으로 하였다. "국민국가(nation-state)의 관점을 넘어 '초국적(transnational)/전지구적(global)' 시각에서 한반도 나아가 인류의 역사와 문화를 이해하는 데 기여하고, 다문화사회에 걸맞은 '공존의 윤리'를 구현한 작품"이라는 선정 기준을 제시하고, 이를 여러 경로를 통해 홍보하였다. 본 연구소는 이 상의 제정과 수여가 그동안 동화 중심의 문학물에 비해 상대적으로 관심이 적었던 어린이·청소년 역사책 분야에 새로운 활력을 부여하고, 학계와 여론의 관심을 촉발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이 기회를 빌려, 본 연구소의 취지에 뜨겁게 호응해 주신 모든 출판사에 감사의 마음을 표한다. 2013년 11월 말까지 288종의 도서가 접수되었는데, 이 가운데 주최 측에서 정한 출판 기간에 출간된 247종의 도서가 예심위원회의 심사를 거쳤다. 예상을 뛰어넘는 호응과 성원에도 불구하고, 본 상이 제시한 선정기준에 부합하는 도서는 그리 많지 않았다. 우선, 예심위원회 심사에서 '역사책' 범주로 분류된 도서는 139종에 불과하였다. '역사책' 범주에 속하는 도서들도 대개는 민족주의적 관점 혹은 일국사적 관점을 보여 준 것들이 대부분이었으며, 이중에는 학습만화를 비롯한 학습보조재 성격의 도서들도 적잖이 포함되었다.
그나마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역사책의 경우는 그 종류도 적지 않고, 선정 기준에 부합하는 도서들이 있어서, 총 5권이 예심위원회를 통해 '권장도서'로 추천되었다. 그러나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도서의 경우는 오직 한 권만이 추천되었다. 청소년 대상이라는 범주의 규정이 모호한 측면이 있기는 하지만,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출판 시장 자체가 위축되어 있는 현실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하여, 본심위원회는 국영수를 중심으로 한 입시위주 학교교육 체제가 청소년들의 독서시간을 빼앗았고, 또 이것이 시장의 위축을 초래하였으며, 이로 인해 다시 청소년들에게 좋은 독서의 기회를 제공하지 못하는 악순환의 결과로 진단하였다. 아울러 본 연구소를 포함하여 그동안 이러한 현실을 외면해온 대학의 관련 학과들과 연구소들 또한 이 책임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함도 물론이다.
예심위원회에서는 어린이 역사책 부문에서 5권, 청소년 역사책 부문에서 1권의 도서를 추천하였다. 지난 1년 간 예심위원으로 수고해주신 최정아(위원장, 동화작가), 안정희(느티나무도서관재단 상임이사), 이동욱(숙지고등학교 역사교사), 한미경(동화작가), 위원께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어린이 부문에 추천된 권장 도서는 다음과 같다. 우선 대상작인 <우리 역사에 뿌리내린 외국인들>(해와나무)과 장려상에 선정된 <제술관 따라 하루하루 펼쳐보는 조선통신사 여행길>(그린북)을 비롯하여, <세 나라는 늘 싸우기만 했을까?>(책과함께어린이), <역사를 바꾼 위대한 알갱이, 씨앗>(미래아이), <세계와 만난 우리 역사>(창비) 등이 추천되었다. 그리고 청소년 부문에는 <십대를 위한 동아시아 교과서>(뜨인돌)이 추천되었는데, 장려상 수상작이다.
청소년 부문에서 한 권만 추천되고, 대상작을 내지 못한 것은 분명 당혹스러운 일이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이는 한국 교육계와 출판계의 치부를 있는 그대로 드러낸 것이었다. 본심위원회에서는 청소년 부문에서의 시상을 무위로 돌리는 것까지도 심각하게 고려하였으나, 이러한 현실에 문제를 제기하는 작은 계기가 되기를 바라면서, 이를 유지해 보기로 뜻을 모았다. 그리하여 유일하게 추천된 뜨인돌 출판사의 <십대를 위한 동아시아 교과서>에 장려상을 수여하기로 결정하였다.
<십대를 위한 동아시아 교과서>의 추천 및 수상 이유는 다음과 같다. 예심위원회의 추천사에서는 두 가지를 강조했다. 하나는 '주제중심의 서술 덕분에 동아시아 국가들이 전체적으로 균형있게 서술되었으며, 역사란 인류가 살아가는 이야기라는 점을 잘 보여주었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전지구적 관점에서 평화가 어떻게 가능한가하는 주제와 관점을 유지하고' 있으며, '국가 간의 이해관계로 인해 야기되는 갈등과 전쟁 속에서 개별 인간의 삶에 주목함으로써 평화의 가치를 이끌어냈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장려상에 그친 주된 이유는 '해당 도서의 파격과 지향은 본상의 취지에 알맞으나, 아홉 개 모둠 속 주제들 사이의 연결고리 설정이 지나치게 자의적'이라는 평가 때문이었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어린이 부문에서는 다섯 권의 책이 추천되었다. 본심위원회에서는 이 중 세 권의 책을 수상 후보작으로 올려두고, 마지막까지 고민하였다. 이 수상 후보작들에 대한 예심위원회의 추천 이유부터 밝히고, 본심위원회의 수상 결정 의견을 덧붙이는 형식으로 추천 및 심사평을 갈음하고자 한다. 여기에서 제외된 두 권에 관하여 잠시 언급하자면, 우선 <역사를 바꾼 위대한 알갱이, 씨앗>(미래아이)은 그 아이디어와 기획은 눈길을 끌었지만, 역사적 사실에 관한 검증되지 않은 '자의적' 해석과 서술이 적지 않게 포함되어 있다는 점이 문제가 되었다. 정수일의 <한국 속의 세계>를 어린이 눈높이에 맞추어 다시 쓴 <세계와 만난 우리 역사>(창비)는 원작만큼이나 좋은 책이지만, '명작 다이제스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평가를 받았다.
<세 나라는 늘 싸우기만 했을까?>(책과함께어린이)는 마지막까지 수상 대상으로 고려되었던 책이다. 예심위원회의 추천사는 한, 중, 일 삼국의 역사를 교류의 관점에서 접근하여 집중적으로 다루었다는 점과 그에 걸맞은 매력적인 제목에서 추천 이유를 찾았다. 본심위원회에서도 이러한 의견에 동의하였고, 상의 제정 취지에 부합한다고 여겼다. 그런데 이러한 장점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최종 수상 대상에서 제외된 이유는, 다른 두 도서에 비해 서술과 구성이 단조롭고, 편집이 자습서 형식으로 밖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별다른 특징이 없다는 점다. 예심위의 추천사에서도 "구성이 좀 더 구조화되었다면 좋았을 것"이라며 아쉬움을 표한 바 있다.
장려상 수상작으로 선정된 <제술관 따라 하루하루 펼쳐보는 조선통신사 여행길>(그린북)은 9차 통신사로 떠난 신유한이 쓴 '해유록'과 10차 통신사의 화원인 이성린이 남긴 '사로승구도'라는 그림을 바탕으로 재구성된 책이다. 예심의 추천사에서는, "신유한이 말하듯이 들려주는 통신사의 여행기를 읽다 보면, 아이들은 …… 자연스럽게 익힐 수 있을 것"이고, "그림과 함께 여행길을 따라가다 보면, 마치 통신사가 머물렀던 일본 곳곳의 풍경이 눈앞에 펼쳐지는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며, 이 책의 장점을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본상 심의 취지와 부합하는 면에 대해서도, "서로의 문화를 존중하고 차이를 인정하는 '조선통신사'라는 소재야말로 국경을 뛰어넘는 역사책에 부합 하는 소재가 아닐까 한다."라고 적고 있다.
본심위원회에서도 이 책은 강력한 대상 후보작으로 마지막까지 고려되었다. 완성도면에서는 가장 뛰어난 책이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었다. 심지어는 통신사를 다루고 있는 기왕에 발간된 어떤 도서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는 평가도 나왔다. 그러나 창의성과 시의성 측면에서 경쟁작에 비해 박한 점수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신유한의 명문장과 사승로의 생생한 그림은 분명 이 책의 품격을 높이는 데에 기여하였지만, '창의성'이라는 기준에서는 오히려 한계를 그었다. 그리고 '시의성' 부분에서도 현재 우리 사회의 큰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다문화 사회'의 문제를 다루고 있는 경쟁작만큼 깊은 인상을 주지 못하였다.
대상 수상작인 <우리 역사에 뿌리내린 외국인들>에 대해 예심위는 추천 이유를 다음과 같이 밝혔다. "트랜스내셔널 히스토리"의 중심에는 민족, 국가가 아닌 '사람과 사람의 만남'이 있어야 한다. … 다문화 사회의 현재와 미래를 만들어 나갈 어린이들에게 세계화 시대에 부응하는 가치관과 사고방식을 제공하고자 한 기획 의도는 이러한 시각에서 출발하였고 내용을 통해 구현되었다. 물론 제목은 '우리'와 '외국인'을 구분하고 있지만, 내용은 오히려 '외국인'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우리'를 구성해 왔고, '우리'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외국인'의 정신과 문화 속에서 살아 숨 쉬고 있음을 알게 한다."
본심위원회의 평가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기획의도와 내용이 이 상의 제정 취지에 가장 부합하는 작품이라는데 이견이 없었으며, 그 구성과 편집 또한 수준급이라는 평가가 이루어졌다. 다만, 이 책은 역사책으로서는 가져서는 안 될, 반드시 지적되어야 할 약점 또한 지니고 있다. 일부이긴 하지만, 역사적 실증을 거치지 않은 내용('아유타국 공주')을 지나치게 단정적으로 서술하고 있다는 점이다.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는 책이라 해도, 실증 문제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호기심이나 관심을 일으키는 정도의 개연성을 서술하는 데 그쳐야 한다는 지적이 있었다. 그러나 이 책이 지닌 다른 많은 장점들이 그 약점을 덮을만하다고 판단하여, 그 단점을 심사평에 명기하는 조건으로 대상작에 선정하였다.
마지막으로 본 심사위원회는 '국사' 패러다임과 대학 입시가 좌지우지하는 척박한 시장 환경 속에서도 본상의 취지에 부합하는 역사책들을 저술하고 출판해 준 작가와 출판사에 다시 한 번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더 나아가, 본 연구소의 작은 시도가 많은 출판사들과 작가들의 노력과 만나 보다 풍성한 열매를 맺고, 종국에는 '국사'와 대학 입시 중심의 시장 토양을 바꾸어 나가게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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