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도 한양대학교 비교역사문화연구소가 선정한 제2회 “국경을 넘는 어린이·청소년 역사책” 본심 심사평
한양대학교 비교역사문화연구소는 어린이 청소년 역사책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2014년부터 매년 “국경을 넘는 어린이·청소년 역사책”을 선정하여 시상하고 있다. 올해는 제2회 시상식을 맞이해 2013년 11월 1일부터 2014년 10월 31일 사이에 출간된 도서들을 엄정하게 심사하였다.
심사는 예심과 본심 두 단계에 걸쳐 진행되었는데, 예심 단계에서 이미 상당 수준의 심사가 이루어졌다. 본심에서는 예심의 의견을 최대한 존중하면서 상 제정의 취지를 충분히 살릴 수 있는 작품들을 선정하는 데 최선을 다하였다.
한양대학교 비교역사문화연구소의 내규에 따라, 본심 심사위원은 강선주(경인교대 교수), 김기정(동화작가), 배성호(서울 수송초등학교 교사), 임지현(비교역사문화연구소장), 허병두(숭문고등학교 교사)로 구성되었다(이상, 가나다 순).
“국경을 넘는 어린이·청소년 역사책” 예심위원회에서는 어린이 역사책 3권, 청소년 역사책 1권을 추천하였다. 어린이 역사책으로는 <불타는 옛 성 1938>(사계절), <다리를 잃은 걸 기념합니다>(서해문집), <생각이 크는 인문학 6: 역사>(을파소)가, 청소년 역사책으로는 <마주보는 한일사 3: 한일근현대사>(사계절)가 각각 추천되었다.
본심위원회에서는 우선 예심을 통과한 도서들을 어떻게 분류할지에 대해 논의하였다. <다리를 잃은 걸 기념합니다>와 <생각이 크는 인문학 6: 역사>를 어린이 역사책으로 분류해도 좋을지가 논의의 초점이었다. <다리를 잃은 걸 기념합니다>에 대해서는, 어린이 독자들의 흥미를 유발할 만한 삽화가 있기도 하여 일정 수준의 독서량을 갖춘 초등학생들이 소화할 만하며, 부모, 교사와 더불어 독서한다면 좋은 학습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의견이 개진되기도 하였다. 하지만 전반적인 서술 구도와 내용의 ‘두께’를 감안할 때 청소년 역사책으로 분류하는 게 온당하다는 데 본심위원들의 의견이 모아졌다. 한편 <생각이 크는 인문학 6: 역사>에 대해서는, 여러 사례들이 동서양을 넘어 많이 소개된 것은 ‘국경을 넘는다’는 취지에 적합하지만 그것이 어린이의 경험을 많이 벗어나서 어린이들이 쉽게 접근하기 어려우며, 독서지도교사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의견이 주를 이루었다. 이에 본 심사위원회에서는 <생각이 크는 인문학 6: 역사> 역시 청소년 역사책으로 분류하기로 결정하였다.
이처럼 본 심사위원회에서는 어린이 독자의 가독성, 저서의 완성도, 확장성 등을 감안하여 예심통과도서를 재분류하고, 이를 바탕으로 수상작 선정에 대해 논의하였다.
어린이 부문의 심사대상도서인 <불타는 옛 성 1938>에 대해서는 기대와 함께 아쉬움이 오갔다. 전쟁의 상처를 곡진한 필체로 묵직하게 그려낸 점은 높이 살만 했다. 그러나 역사적 사실을 넘어서 정작 작가가 응시하고 꿰뚫어야 할 것은 전쟁 그 너머에 있을 것이며 이로 인해 비롯되었을 분노와 슬픔이 정제되지 않은 채 서술에도 곳곳에 보이는 점은 짚어볼 문제로 지적되었다. 그러나 한편으로 <불타는 옛 성 1938>이 “전쟁이 없는 평화로운 세상을 꿈꾸며 한국, 중국, 일본 세 나라의 작가들이 함께 만드는 그림책”, 즉 <평화그림책> 기획의 일환으로 출간되었다는 점은 높게 평가되었다. 본 심사위원회에서는 <평화그림책> 기획이 역사책 서술에 새로운 인식 틀을 제공했다는 점, 이 기획이 향후 발전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는 점을 평가하여 <불타는 옛 성 1938>에 장려상을 수여하기로 결정하였다. 단, 출판기획에 대한 평가에서 비롯된 선정이므로, 장려상은 출판사에 수여하기로 결정하였다.
청소년 부문의 심사대상도서 가운데에서는 <다리를 잃은 걸 기념합니다>가 높은 평가를 받았다. 무엇보다 제1차세계대전이 실로 트랜스내셔널한 시각에서 조망되었다는 점, 작가의 자료 조사가 매우 치밀하게 이루어졌다는 점이 높은 평가를 받았다. 역사책을 서술하는 방식과 솜씨가 충분히 돋보이기도 하였다. 또한 번역이 매우 깔끔하다는 데 의견이 일치했는데, 한 심사위원은 “번역문학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고 극찬하기도 하였다. 이에 본 심사위원회에서는 <다리를 잃은 걸 기념합니다>를 청소년 부문 대상으로 선정하고, 출판사와 번역자에게 상을 수여하기로 결정하였다. 원저자 니콜라우스 뉘첼 작가에게는 시상식 참석 여부를 타진하여, <다리를 잃은 걸 기념합니다>에 대한 특별강연을 의뢰하기로 하였다.
<생각이 크는 인문학 6: 역사>에 대해서는, 많은 ‘모듈’을 지니고 있어 확장성이 크다는 평가가 많았다. 그러나 전체적인 짜임새와 완성도가 떨어진다는 지적이 있었으며, 저자의 목적의식이 지나치게 전면에 드러나 있어서, 독자들의 흥미를 오히려 떨어뜨린다는 점도 지적되었다. 이 같은 논의의 결과 본 심사위원회에서는 <생각이 크는 인문학 6: 역사>를 수상대상에서 제외하였다.
<마주보는 한일사 3: 한일근현대사>의 경우, 새로운 역사책쓰기의 시도 자체는 높은 평가를 받았지만, 다음의 몇 가지 한계점이 지적되었다. 우선 책 제목과 용어의 선택에서 엿보이듯이, 전체적인 구도 자체가 트랜스내셔널이 아니라 내셔널과 내셔널의 조합에 불과하다는 의견이 있었다. 또한 서술내용에도 일관성이 없다는 데 본심위원들의 의견이 일치하였다. 필진의 필력과 논조에 차이가 많아, 전반적으로 내용이 들쑥날쑥하다는 인상이 남았다. 한편 역사적 사실에 대한 해석이 상충할 경우 이를 모호하게 ‘봉합’하기도 하는데, 오히려 서로 다른 의견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편이 좋았으리라는 의견도 개진되었다. 결국 새로운 역사서술의 시도 자체는 높이 사지만, 트랜스내셔널한 역사책의 모델이 되기에는 부족하다는 데 본심위원들의 의견이 일치하였다. 이에 본 심사위원회에서는 <마주보는 한일사 3: 한일근현대사>를 수상대상에서 제외하였다.
이러한 논의를 거쳐 본 심사위원회에서는 어린이 부문 장려상작으로 <불타는 옛 성 1938>을, 청소년 부문 대상작으로 <다리를 잃은 걸 기념합니다>를 선정하였다. 우연의 일치이기는 하지만, 두 부문 모두 번역서가 수상작이다. 이와 관련해 국내 작가들에 대한 배려와 격려가 필요하다는 견해도 나왔지만, 어디까지나 상의 취지에 맞는 도서를 수상작으로 선정한다는 기본 원칙을 재확인하였다.
“국경을 넘는 어린이‧청소년 역사책” 심사규정에 따르면, 예심위원회에서 추천하는 도서의 수는 부문별로 5권 이상 15권 이하이다. 하지만 올해 예심을 통과한 도서는 총 4권으로 작년의 총 6권에서 2권이 줄어들었다. 입시를 중심으로 한 어린이 청소년 도서 시장의 두터운 벽을 새삼 절감하지 않을 수 없다. 이와 관련해서는 특히 어린이 부문에 대한 시상이 장려상에 그치게 된 점이 못내 아쉽다. 입시 부담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어린이 역사책 관련 기획자, 작가 여러분의 분발을 주문하고 싶다.
그러나 한편으로 예심통과도서들의 내용을 살펴보면,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트랜스내셔널한 역사책 서술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출판업계와 작가들의 진지한 노력이 바야흐로 구체화되어가고 있다는 인상을 받는다. 본 심사위원회에서는 모델을 제시한다는 입장에서 다소 금욕적으로 수상작을 선정하였지만, 예심을 통과한 도서들은 모두 내셔널한 지평에서 벗어나 드넓은 공존을 지향한 우리 시대의 소중한 발자취이다. 다시 한 번 출판관계자 여러분들의 노고에 경의를 표하며, 긴 호흡으로 “국경을 넘는 어린이·청소년 역사책”들의 물줄기가 굽이치는 풍경을 그려본다.
본심위원 강선주, 김기정, 배성호, 임지현, 허병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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