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사과정:
올해는 제3회 시상식을 맞이해, 2014년 11월 1일부터 2015년 10월 31일 사이에 출간된 도서들을 엄정하게 심사하였다.
심사는 예심과 본심의 두 단계로 진행되었다. 예심위원회는 2015년 2월 11일~2015년 11월 24일의 기간 동안 총 7차례에 걸쳐 개최되었으며, 이와는 별도로 온라인 회의도 수시로 진행되었다. 여름에 메르스 사태로 많은 공식 행사가 취소되었던 것이 예심위원회의 진행에도 영향을 미치기도 하였다. 전반적인 출판 시장의 불황에 더하여, 절대 다수의 어린이・청소년 역사책이 일국사적 관점에서 한국사를 다루고 있다는 점 때문에 예심위원회의 고심이 깊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 상의 제정 취지를 충분히 살릴 수 있는 책들로 추천도서를 선정한다는 기존의 기조를 유지하여, 총 4권의 추천도서(아래 도서목록 참조)를 선정하여 본심위원회에 제출하였다.
본심위원회는 2016년 2월 15일에 개최되었다. 예심 단계에서 이미 상당 수준의 심사가 이루어진 만큼, 본심에서는 예심의 의견을 최대한 존중하면서 상 제정의 취지를 충분히 살릴 수 있는 작품들을 선정하는 데 최선을 다하였다. 본심위원회에서는 완성도, 가독성, 확장성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하여, 아래와 같이 어린이 부문과 청소년 부문 각각 대상작 1권씩을 선정하였다.
수상작 및 예심통과도서목록, 심사위원 명단:
◆ 수상작
어린이 부문 대상
<안중근 재판정 참관기(김흥식 엮음, 서해문집, 2015)
청소년 부문 대상
<(한국사에 비추어 본) 거창의 역사>(신용균 지음, 역사공간, 2015)
◆ 예심통과도서목록
어린이 부문
<낡은 사진 속 이야기>(천롱 지음, 천롱 그림, 전수정 옮김, 사계절)
청소년 부문
<게토의 색>(알리네 삭스 지음, 카릴 스첼레츠키 그림, 배블링북스 옮김, 산하)
◆ 예심위원회 위원 명단
이동욱(숙지고등학교 교사, 위원장), 윤준기(풍양초등학교 교사), 최정아(동화작가), 한미경(동화작가)
◆ 본심위원회 위원 명단
김기정(동화작가, 위원장), 강선주(경인교대 교수), 김태호(한양대 비교역사문화연구소), 배성호(서울 수송초등학교 교사), 허병두(숭문고등학교 교사)
본심 심사평:
본 심사위원회에서는 2014년 12월부터 2015년 11월 사이 출간된 어린이·청소년 역사책 가운데, 『거창의 역사』, 『게토의 색』, 『낡은 사진 속 이야기』, 『안중근 재판정 참관기』 등(가나다순) 예심위원회의 심사를 거친 네 편의 도서를 심사하였다. 어린이·청소년 역사책의 절대 다수가 한국사를 민족사 또는 일국사적 관점에서 다룬 책들이라는 출판 시장의 객관적인 여건이 크게 바뀌지 않은 터라, 올해에도 예심을 통과한 책이 많지 않았다.
이 가운데 『낡은 사진 속 이야기』는 “한·중·일 공동기획 평화그림책” 시리즈의 일부로서, 같은 시리즈의 『불타는 옛 성-1938』이 작년에 어린이 부문 장려상 수상작으로 선정된 바 있다. 이미 본 연구소는 작년의 수상을 통해 시리즈 전체의 취지를 높이 평가한 바 있는데, 꾸준히 좋은 평가를 받는다는 사실에서 다시 한번 이 시리즈의 저력을 확인할 수 있었고, 추후 계속해서 나올 책들도 주목해야 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출판사와 저자 및 역자들의 꾸준한 발전과 정진을 기원한다.
다음으로 평가한 『게토의 색』은 책의 내용과 만듦새에 대해서는 높은 평가를 받았다. 특히 유대인들을 수동적인 희생자로 묘사하는 데 머물지 않고 능동적인 저항에 나서는 모습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비슷한 주제를 다룬 다른 책들과 차별성을 보여주었다는 평을 얻었다. 하지만 “홀로코스트 문학”이 이미 하나의 장르와 다름없는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현실에서, 전쟁과 학살을 소재로 삼았다는 이유만으로 이 책을 “국경을 넘는 어린이·청소년 역사책”으로 간주하는 데에는 좀 더 신중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되었다. 현재 한국의 출판 시장에서 어린이·청소년 역사책의 절대다수가 한국사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에 한국 아닌 나라의 역사를 다룬 책이 아쉬운 것은 사실이지만, 이 책이 이미 어느 정도 정형화된 홀로코스트 서사를 넘어 역사적 비극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갖도록 해 줄 수 있다고 보기에는 아쉬운 점이 있었다. 따라서 본 위원회는 책 자체의 미덕에도 불구하고 『게토의 책』도 수상작에는 포함시키지 않는 것으로 결정하였다.
『안중근 재판정 참관기』는 외신 기사를 토대로 안중근의 재판 기록을 재구성하여 생생하게 보여준다는 참신한 착상과 구성으로 심사위원들의 주목을 받았다. 안중근의 이름과 그의 활동을 모르는 한국인은 거의 없지만, 교육 현장에서나 일상의 대화에서나 많은 사람들은 안중근을 “의사”와 “의거”라는 낱말들로만 기억할 뿐, 정작 그가 당시의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 정세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지, 그가 자신의 행동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고 있었는지는 잘 알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 책은 안중근의 재판 기록을 다룬 외신 기사를 현대 독자가 읽기 쉽도록 재구성함으로써 그런 부분들을 독자 스스로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준다는 면에서 매우 높은 평가를 받았다. 오늘날 한국의 시선에서 정리된 “의사” 또는 “처단”과 같은 용어들이 더 이상의 평가와 판단의 여지를 차단할 우려가 있는 데 비해, 사건 당시 안중근의 주장, 그를 기소한 일본측의 주장, 그리고 그 공방을 전달하는 외신의 목소리 등을 그대로 읽어봄으로써, 독자들이 안중근과 그의 활동을 더 입체적으로 생생하게 이해하고 그 의미에 대해 독자 스스로의 주체적인 판단을 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 책은 민족주의 서사에서 가장 강렬하게 호출되는 사건도 일국사의 경계에 갇히지 않고 다양한 방식으로 생각해 볼 수 있으리라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또한 법정극과 같이 대화 형식으로 책이 구성되어 있으며, 사진과 당대의 문서 등 다양한 참고 자료를 함께 실었기 때문에 학교 현장에서 다양한 형태로 활용 가능성이 높다는 점도 높은 평가를 받았다. 학생들이 이 책의 내용을 바탕으로 역할극을 한다거나, 책의 내용에서 출발하여 추가 연구를 할 수 있을 것이고, 그밖에도 여러 가지 활용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한다.
다만 책 말미에 덧붙인 엮은이의 말이 심사위원들 사이에서 토론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독자의 독서 경험에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엮은이가 자신의 목소리로 독해 방향을 제시함으로써, 책의 본문과 부가 정보를 통해 열릴 수 있었던 다양한 독해의 가능성을 스스로 닫아 버리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가 있었던 것이다. 그에 따라 이 책을 자칫 “국경을 넘는 어린이·청소년 역사책”이라는 본 상의 취지와 배치되는 방향으로 받아들이는 독자도 나올 수 있지 않겠는가에 대해 심사위원들은 깊이 있는 토론을 벌였다. 하지만 본문이 지닌 힘은 결국 독자들 안에서 예단할 수 없는 다양한 형태로 발현될 것이라는 데 심사위원들이 인식을 같이 하였다. 따라서 구성의 묘를 살린 점을 높이 평가하며 『안중근 재판정 참관기』를 어린이 부문 수상작으로 선정하였다.
『거창의 역사』는 시중의 역사책 대부분이 중앙의 시선에서 출발하는 것과는 반대로, 지역의 시선에서 출발하여 한국사라는 더 큰 서사와 합류하는 역사 쓰기를 추구했다는 점에서 매우 높은 평가를 받았다. 본 상의 이름이 “국경을 넘는 어린이·청소년 역사책”이라고 하여 반드시 여러 나라의 사례를 비교하여 쓴 책만을 대상으로 하는 것은 아니다. 그와 같은 접근은 오히려 역사적으로 구성된 “국경”이나 “국가”와 같은 개념들을 절대시하는 방향으로 흐를 수 있기 때문에 본 상이 경계하는 경향이기도 하다. 본 상의 문제의식인 “국경을 넘는 역사”란 우리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왔던 국가라는 단위를 역사적으로 구성된 것으로 파악하자는 것이므로, 국가라는 단위와 그 경계인 국경의 우연적이고 유동적인 면모를 역사 속에서 보여주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접근이다. 이를 위해서는 한 나라의 역사를 다른 나라와 비교하는 방식으로 국경을 넘을 수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 중앙과 수도의 시선이 아닌 지역의 시선에서 역사를 씀으로써 국가라는 것이 단일하고 견고한 하나의 덩어리가 아님을 보여줄 수도 있다. 적절하게 구성된다면, 지역에서 출발하여 중앙 또는 전국으로 거꾸로 올라가는 역사 쓰기야말로 역사를 국경으로 구획하고 재단하려는 경향에 대한 효과적인 대응이 될 수 있다. 이 책은 지역을 “변방”으로 치부하는 중앙 중심의 역사 쓰기와도 구별되며, 다른 한편으로 지역 출신의 위인이나 명사를 알리는 데 치중하는 기존의 지역사와도 구별된다는 점에서, “국경을 넘는 역사” 쓰기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줄 수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다만 내용의 깊이를 추구하다 보니 책의 분량과 난이도 면에서 청소년 도서로 분류하기에는 다소 어렵지 않은가 하는 우려가 있었다. 하지만 청소년의 독서 능력에 굳이 상한선을 설정할 필요가 없다는 점과, 전편을 통독하기에는 책의 분량이 많더라도 학교 현장에서 부분적으로 발췌하여 자료로 활용할 수 있는 가능성은 다양하게 열려 있다는 점 등을 감안하면 이것이 이 책의 미덕을 가릴 만큼의 단점은 아니라는 점도 참작되었다. 이에 따라 심사위원회는 『거창의 역사』를 청소년 부문 대상 수상작으로 선정하였다.
올해로 세 번째를 맞는 “국경을 넘는 어린이·청소년 역사책”은 올해 최초로 어린이 부문과 청소년 부문 둘 다 대상 수상작을 선정할 수 있었다. 비록 작년에 이어 올해에도 출판 시장의 척박한 현실이 본심 대상 도서를 선정하고 수상작을 선정하는 데 큰 어려움을 안겨 주었지만, 이것이 어려움 속에서도 본 상의 문제의식에 부응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작은 신호이기를 기대한다. 이 상이 어려운 여건에서도 좋은 역사책 만들기를 고민하는 저자와 편집자 그리고 출판사에게 작은 격려가 될 수 있기를, 나아가 “국경을 넘는 역사”의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책이 더 늘어날 수 있는 마중물이 되기를 소망한다.
본심위원 김기정(위원장), 강선주, 김태호, 배성호, 이동욱, 허병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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