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세 번째를 맞이하는 ‘트랜스내셔널 역사학 학문후속세대 학술회의: 전쟁의 흔적, 일상의 변화’가 지난 8월 29일 개최되었다. 이번 학술회의 역시 예년과 마찬가지로 역사학의 차세대를 이끌어 갈 참신한 아이디어를 가진 젊은 연구자들에게 개진(開陳)의 기회를 부여하고 이들을 격려하기 위한 것이었다. 회의장에서 다양한 관심사를 가진 연구자들은 자신만의 고민을 정제해나가는 과정을 과감하게 제시해주었고, 이들의 노력을 격려하기 위한 선배 연구자들의 조언 역시 자리를 더욱 빛내주었다.
박사과정생을 중심으로 한 학술회의는 7편의 연구발표와 각각에 대한 토론으로 연이어 진행되었다. 먼저 이정수는 일본 에도시대와 메이지시대에 제작된 <센고쿠 전투도병풍(戦国合戦図屏風)> 13종을 분석하고, 각 작품들이 전국시대의 전투상황을 상세히 묘사할 뿐만 아니라 시대의 변화에 따라 이제 침략을 선전하는 데 활용되는 등 다양한 함의를 갖게 되었음을 지적하였다. 임인재는 동남아시아 화교사회에 대한 국민당 정권의 교육정책을 소개하며, 국민당 정권이 각지의 화교들에게 민족의식을 고취하고자 하였지만 동남아시아의 각 식민지 정부의 사례에서 보이듯 현지의 억압으로 인하여 한계가 있었음을 논증하였다.
안미현은 커트 보니것의 소설 <제5도살장>의 서사를 분석하고 소설의 주인공을 통해 제시되는 허구적 이야기, 즉 ‘멋진 새로운 거짓말’을 통해 고정된 역사적 사실과 가변적인 그 영향력의 관계를 해석하였다. 정종원은 필기구의 의미가 근대기를 거치며 어떠한 변화를 맞았는지를 시계열적으로 분석하고, 전통필기구의 상징권력인 붓과 근대기의 긴장마다 그 존재를 드러내는 철필을 통해 필기구의 의미를 ‘권력과 저항의 도구’로서 재음미하였다.
김이경은 덴마크의 폴케호이스콜레(Folkehøjskole), 즉 농촌 중심의 시민대학 모델이 20세기 초 한국과 일본에 도입되는 과정을 검토하고, 두 국가가 모두 농민학교의 기능에 천착하여 실제 폴케호이스콜레가 추구했던 시민 양성의 기능에 주목하지는 못했음을 지적하였다. 이치무라 시게카즈는 1965년에 발생했던 일명 ‘김동희 일병 탈영사건’과 이에 대한 일본의 반전단체의 반응을 통하여, 일본의 사회운동이 한국 사회를 ‘제2, 제3의 김동희’가 있는 민중적 존재로 인식하게 된 과정을 분석하였다. 마지막으로 이승아는 중국의 경제발전을 두고 서양의 자본주의 발달 모델을 거부하고 ‘숨겨진 농업혁명’론을 주장했던 황쫑즈(黄宗智)의 연구를 검토하고, 이로부터 새로운 생산기술의 정착과 그 영향력을 향후 연구의 방향으로 제시하였다.
이번 학술대회의 발표들은 역사의 격동기가 개인의 삶을 어떻게 변화시켰으며, 역사가들은 이를 어떻게 해석해야하는가의 문제에 주목하였다는 점에서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있었다. 이 문제를 해석하기 위해 발표자들은 풍부한 사료는 물론 상징체계와 같은 철학적인 주제까지 집요하게 검토하여 청자들에게 강렬한 인상과 의미 있는 토론거리를 남겼다. 이번 대회는 ‘역사학 학술대회’라는 형식을 넘어 학문의 양식을 넘나드는 도전적인 과제들로 가득하였고, 발표자들은 물론 같은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여러 분야의 참가자들에게도 신선한 자극을 주었다. 해가 갈수록 첨예하고 정교해지는 발표의 수준에 다음 해의 ‘학문후속세대’의 면모를 새삼 기대하게 되었다.
작성자: 고한빈(한양대 석사수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