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반도의 냉전체제는 해방 이후에 출현하기 시작해 1953년 휴전이후에 본격적으로 구축되었다. 소련은 1945년부터 북한지역에 사회주의 질서를 주도적으로 전파하였으며, 중국은 한국전쟁을 계기로 북한에 대한 영향력을 확장하였다. 북한정치세력은 국가수립 전후에 소련 등 사회주의진영의 질서를 적극 수용했지만, 전쟁 이후에는 이에 대해 수용․갈등․변용의 방식으로 대응하였다. 특히 1956년에 발생한 조선노동당 전원회의사건은 북한이 사회주의진영과 거리를 두게 된 결정적 계기였다. 그 후 북한은 내부적으로 유일체제를 강화하면서 독자적인 사회주의체제를 구축하기 시작했다.
이 학술회의는 냉전체제가 구축되는 과정에서 북한이 사회주의진영과 주고받은 영향과 상호관계를 해명하기 위해 기획되었다. 각 발표는 냉전체제와 북한을 상징적으로 포착할 수 있는 주제를 담고 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냉전과 사회주의문화, 냉전과 의학, 냉전과 사회주의경제, 냉전과 과학기술, 냉전과 우주 등을 다루고 있다. 냉전사 연구는 독자적 학문영역으로 확립된 지 오래되었으나, 냉전체제와 북한의 관계에 대한 연구는 시작단계에 놓여있다. 이 학술회의는 ‘냉전체제와 북한’이라는 주제로 현대 북한체제의 역사적 기원과 성격을 재고하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
첫째, 김선호는 「냉전 초기 북한과 소련의 문화교류」라는 논문을 통해 한국전쟁 이후 북한과 소련이 진행한 문화교류의 체계와 양상을 분석하고 있다. 양국의 문화교류는 소련대외문화연락협회와 조선대외문화연락협회가 주도하였으며, 양국은 상호주의 원칙에 입각해 문화교류를 추진하였다고 보고 있다. 둘째, 김진혁은 「사회주의진영의 대북한 의료지원과 유산(1945-1958)」이라는 논문을 통해 사회주의진영이 북한의 의료체계 형성에 끼친 영향을 분석하고 있다. 북한은 해방 이후에 소련 방식의 의료체계를 이식받았지만, 한국전쟁동안 동유럽국가의 의료지원과 의료인력 교환을 통해 이 국가들의 의료체계와 학맥을 수용하였다고 보고 있다.
셋째, 조수룡은 「북한의 전후복구3개년계획 수립과 소련의 개입」이라는 논문을 통해 한국전쟁 이후 당내갈등의 배경으로 지목된 말렌코프의 신노선의 영향을 재검토하였다. 이 논문은 말렌코프의 노선이 조선로동당 내 비주류에게 영향을 끼친 것이 아니라 북한대표단의 소련 방문 시 소련지도부에 의해 직접 관철되었다고 보고 있다. 넷째, 채준형은 「냉전기 첸쉐썬(钱学森)의 과학기술론과 사회발전론, 1954-1989」이라는 논문을 통해 중국 국방과학의 아버지로 평가받는 첸쉐썬의 인식론적 변화를 추적하고 있다. 첸쉐썬은 시스템과학을 마르크스주의와 연결시키고, 이를 사회와 국가에 적용해 “거대 시스템(巨系统)”을 구현하려 했다고 보고 있다.
다섯째, 류기현은 「1957년 소련 스푸트니크호 발사에 대한 북한의 인식」이라는 논문을 통해 1957년에 성공한 스푸트니크호 발사가 북한의 냉전과 분단 인식에 끼친 영향을 분석하고 있다. 북한은 스푸트니크호의 발사로 조성된 사회주의권의 우위를 강조했으며, 그로 인한 냉전진영의 공존 가능성과 별개로 한반도에는 여전히 위기가 계속되고 있다고 인식하였다.
작성자 : 김선호(HK연구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