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CH에서는 <고아, 족보없는 者>를 주제로 워크샵을 개최하였다. 2012년 5월 11일 오후 1시부터 6시 30분까지 진행된 워크샵은 주로 RICH의 일반연구원 및 연구교수들이 중심이 되어 조직되었다. 이들은 그동안 고민해온 ‘트랜스내셔널’ 문제의식에 기반하여 ‘고아’라는 공통의 주제를 가지고 다양한 방면에서 발표와 토론을 하였다. 이 워크샵은 작년(2010년 11월 19일)에 있었던 <대학원생을 위한 트랜스내셔널 강좌-고아, 족보없는 者>라는 기획 하에 진행한 강연, “‘고아’ 내러티브와 그 역사적 맥락을 트랜스내셔널하게 읽어보기”의 후속으로 이루어졌다. 첫 번째 기획이 대학원생을 대상으로 ‘고아’를 읽어내기 위한 시각으로 ‘트랜스내셔널’을 제시하였다면, 두 번째 기획은 이러한 시각에 기반하여 다양한 필드에서 ‘고아’를 학문적으로 탐구한 연구 성과를 발표하는 자리를 마련한 것이었다.
RICH가 연이어 이를 문제시하는 이유는 ‘고아’가 가족 내러티브 (family narrative) 밖에 놓여있는 존재로, 규범적이고 정상적인 자아와의 대조를 이루는 정체성이기 때문이다. 가족 내러티브 안에 자리잡은 규범적인 자아가 바람직한 ‘시민/국민’의 이상적인 모델로 기능하면서 근대국민국가의 사회적, 역사적, 정치윤리적 비전 뿐 아니라 ‘인간’이라는 존재론적 범주를 정의하는 지표가 되어온 데 반해, ‘고아’는 그렇게 구성된 규범적 자아의 바깥/외연을 구성하는 존재로 간주되었다. 그런데 ‘고아’는 또한 역사, 가문, 전통 등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자족적인 존재로 근대적 의미에서의 ‘인간’의 원형이기도 하며, 거침없이 떠돌고 방랑하며 새로운 역사를 쓰고자 하는 이산과 디아스포라의 가장 강력한 상징/메타포로 기능하고 있다. ‘고아’는 가족 내러티브 밖에 존재하지만 ‘돌아온 탕아(prodigal son)’, ‘입양아(foster child)’, ‘상속자’ 등의 형태로 가족 내러티브로 다시 돌아오기도 하며 그 과정에서 이 내러티브의 규범성을 균열내기도, 강화하기도, 혹은 변화시키기도 한다. 이런 의미에서 ‘고아’, 혹은 ‘족보 없는 자’, 혹은 아감벤의 표현에 의하면 “헐벗은 존재(bare life)”는 경계적인 개념으로, '자아(self)'와 '반자아(self-to-be)', ‘시민’과 ‘무국적자’, ‘인간’과 ‘비인간’ 등의 범주를 문제화하고, 그 범주들이 구성되고 해체되는 다양한 방식을 조명하는데 유용한 지점이 될 수 있다.
이날 발표된 논문들은 “국가의 시선 속 ‘고아’: 근대 프랑스 고아 개념의 변천”(오경환, 성신여대 사학과), “인조인간, 포스트/휴머니즘, 그리고 “헐벗은 생명”(박선주, 인하대 영어교육), ““애비 없는 자식”, 그 낙인의 정치학: 식민지시기 ‘私生兒(子)’ 문제의 법적 구조”(홍양희, 한양대 RICH), “일본계 고아, 혼혈 고아 및 혼혈아의 정체성 문제: 2차 대전 중 일본계 미국인 수용 정책을 중심으로”(권은혜, 한양대 RICH), “고아와 혼혈-근대의 잔여(殘餘)들”(허병식, 동국대 국문과), “잉여와 연대: 북한의 전쟁 고아들에 대한 몇가지 생각”(김지형, 한양대 RICH) 등 총 6편이 발표되었다. 종합토론에는 김상현(한양대), 장세진(인하대), 민가영(서울여대) 교수 등이 참여하였다. 이 자리를 통해 모든 참여자들은 ‘고아’가 역사적 사실로서, 혹은 추상적인 메타포로서, 가족 내러티브, 규범적 자아(시민, 국민, 인간), 근대국민국가/글로벌라이제이션의 인식적, 정치적 체제 등에 대해 제기하는 문제들을 탐구하고자 하였다. 이때 발표된 논문들은 특정 학술지에 기획특집으로 게재될 예정이다.
작성자: 홍양희 HK연구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