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14일(토), 한양대학교 인문과학대학 205호실에서 제2회 “국경을 넘는 어린이‧청소년 역사책” 시상식 및 기념 심포지엄이 개최되었다. 올해 행사는 총 3부로 구성되었다. 심포지엄 “혐오의 정치: 어린이‧청소년 역사책 속의 ‘그들’과 ‘우리’”에 이어 시상식이 거행되었으며, 끝으로 청소년 부문 대상 수상작의 저자인 니콜라우스 뉘첼 작가의 특별강연이 있었다.
심포지엄에서는 어린이‧청소년 역사책에 스며있는 차별과 혐오의 담론에 대한 발표가 이루어졌다. 김태호 교수(비교역사문화연구소)는 한국의 어린이 역사책을, 이소영 교수(비교역사문화연구소)는 미국의 청소년 역사책을, 김은권 교수(청강문화산업대)는 한국의 어린이 역사만화를 소재로 삼아 발표하였다.
김태호 교수는 역사책에 보이는 차별과 혐오의 담론이 지니는 다양한 결을 세심하게 드러내 보였다. 김 교수는 역사책 속에 등장하는 ‘적’이 스테레오타입화 되어 있는 듯이 보이면서도, 실상 매우 복잡한 맥락들을 지니고 있다고 지적하였다. 이어서 김 교수는 ‘우리’가 ‘적’으로 표상되는 상황에 대한 상상과 고민이 필요하다고 지적하는 한편, 미시적 차원에서 접근하면 의외로 ‘그들’과 ‘우리’ 사이에 많은 빈틈과 구멍이 있으며, 그러한 빈틈과 구멍을 통해 열린 방식의 역사책 서술도 가능하리라 전망하였다. 전반적으로 평이하고 간결한 설명이었으며, 관련 삽화도 적절하게 제시되어 문외한의 입장에서도 흥미롭게 청취할 수 있었다.
이소영 교수는 미국 청소년역사책 “디어 아메리카(Dear America)” 시리즈 가운데 3권을 선별‧분석하여, 각 텍스트에 내재되어 있는 배제와 포섭의 서사에 대해 발표하였다. 이 교수는 “디어 아메리카” 시리즈의 이야기들을 ①‘내부에 있어도 우리-미국인은 아니었던 그들’, ②‘외부로부터 들어와 우리-미국인이 되어가는 그들’, ③‘그들을 끌어안아 우리-미국인을 넓혀가는 우리’의 세 가지 유형으로 분류하고, 각 유형을 대표하는 이야기를 제시‧분석하였다. 이 교수는 ①유형으로 1950년대 버지니아주에서 생활한 흑인소녀 다우니의 이야기를, ②유형으로 1903년 뉴욕에서 생활한 러시아-유태계 이민자가족의 막내딸 지포라의 이야기를, ③유형으로 1941년 반일감정이 팽배하던 당시 시애틀에서 생활한 파이퍼의 이야기를 다루었다. 이 교수는, 각 텍스트 내에서 하나의 미국, 미국인이 추상되어가는 가운데 포섭과 배제의 서사가 서로 긴밀하게 맞물린 형태로 전개되고 있다는 점을 날카롭게 지적하였다.
김은권 교수는 만화가답게 다양한 볼거리를 준비해 주었다. PPT를 활용하여 시대별로 대표적인 어린이 만화와 그 등장배경 등을 일목요연하게 해설해 주었다. 최근의 화제작 <아! 팔레스타인>을 거론하며 한국 어린이 만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설명한 부분은 특히 인상에 남았다. 다만, 한 가지 아쉬웠던 점은 심포지엄의 전체 주제와의 접점이 그다지 드러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발표문에 ‘타자’, ‘경계’라는 키워드가 등장하기는 하였지만, 매우 흥미로운 강연이었던 만큼, 주제에 보다 집중한 심도 있는 분석이 이루어졌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이번 심포지엄에서 한 가지 더 눈길을 끈 것은 각 발표에 대해 지정토론을 배정하지 않고, 곧바로 플로어 자유토론을 진행했다는 점이다. 일반적인 학술심포지엄의 형식에서 벗어나 격의 없는 소통의 장을 마련한다는 취지였는데, 흥미로운 시도라고 여겨졌다. 실제로 종합토론은 각 분야 종사자들의 자유로운 발언과 응답이 비교적 활발하게 오가는 분위기 속에서 진행되었다.
시상식에서는 어린이 부문 장려상작인 『불타는 옛 성 1938』과 청소년 부문 대상작인 『다리를 잃은걸 기념합니다』에 대한 시상이 이루어졌다. 두 책 모두 양서임에는 틀림없어 보였지만, 번역서라는 점이 다소 마음에 걸리기는 하였다. 국내작가들과 기획자들의 분발이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으로는, 수상작을 비롯하여 예심을 통과한 도서들에 대한 보다 구체적인 소개, 그리고 현장 판매 같은 것도 시도해봄직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특별강연은 영어로 이루어졌지만, 사전에 배포된 자료집에 번역문이 실려 있어 내용을 이해하는 데 큰 어려움은 없었다. 순차통역이 준비되어 있기도 하여, 강연 후에는 활발한 질의, 응답이 오갔다. 창작과정에 대한 작가들의 구체적인 질문도 흥미로웠는데, 특히 인상 깊게 남은 것은 독일군의 전쟁범죄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지는 않지만 받아들인다.”는 니콜라우스 뉘첼 작가의 말이었다. 베트남 전쟁과 한국군의 전쟁범죄를 되돌아보게 하는 한 마디였다.
전반적으로 행사 자체는 큰 무리 없이 진행되었다고 여겨지지만, 주최 측이 홍보에 좀 더 힘을 기울였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행사의 성패가 관중의 동원에 달려 있는 것은 아닐지라도, 좋은 취지를 지닌 행사가 ‘그들만의 리그’로 마무리되는 것은 지양해야 할 바가 아닌가 생각한다.
작성자: 이세연 HK연구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