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양대학교 비교역사문화연구소에서는 제2차 세계대전이 종전되고 새로운 국제질서가 막을 연 지 70주년이 되는 해를 기념해 2015년 12월 11일~12일 이틀 동안 '제2차 세계대전의 기념과 기억의 정치 Commemorating World War II and the Politics of Memory'를 주제로 한 국제학술회의를 개최하였다.
먼저 Peter Fritzsche 미국 일리노이주립대 교수는 ‘30년 전쟁, 100년의 기억 전쟁: 독일의 20세기’라는 제목의 발표에서 2차 세계대전에 대한 독일의 시각이 자신들을 전쟁의 피해자로 바라보는 관점에서 홀로코스트를 중심으로 독일의 책임을 인식하는 방식으로 어떻게 변화해 갔는지를 이야기하였다. 발표에서는 또한 1차 세계대전에 대한 기억과의 비교를 통해 기억이 항상 비균질적인 방식으로 구성됨을 보여주었다.
이어진 오슬로대학 Vladimir Tikhonov(박노자) 교수의 발표 ‘“소련 인민들의 위대한 조국전쟁”: 소련 이후 시기의 기억’에서는 1991년 소련 붕괴 이후 러시아연방에서 ‘위대한 조국 해방 전쟁’이라는 서사가 어떻게 바뀌고 또 이어졌는지를 두 단계로 나누어 설명하였다. 1990년대에는 이를 두 전체주의 체제 사이의 전쟁으로 보는 관점이 더 선호되었다면, 2000년대 푸틴 체제 아래에서 이 서사는 과거처럼 사회주의를 강조하지 않는 형태로 거의 복원되었다.
한양대학교 비교역사문화연구소의 박찬승 교수는 ‘동아시아에서의 제2차 세계대전의 기념과 기억’이라는 주제로 중국, 일본, 한국, 대만 등 동아시아 각국에서 나타나는 서로 다른 기념행사에 주목하면서 이들이 모두 각 나라에서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이 어떻게 기억되는지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음을 강조하였다. 발표는 이 지점이 역사교과서와 2015년 8월의 아베 담화를 둘러싼 현재적인 갈등과도 이어지고 있음을 짚으며, 동아시아 각국에서 이러한 전쟁에 대한 기억의 차이들을 어떻게 가교해 나갈 수 있을지에 대한 물음을 제기하는 것이기도 했다.
이어진 켄터키대 Akiko Takenaka 교수의 발표 ‘아시아 태평양 전쟁에 대한 일본의 기억: 1995년 이후의 수정주의적 전환에 대한 분석’은 지난 전쟁을 둘러싼 일본의 기억이 아시아 태평양 전쟁을 바라보는 두 가지 상반되는 시각 중 어느 것을 취하느냐는 정치적인 입장과 관련되어 있으며, 이러한 전쟁에 대한 기억의 문제가 특히 전후 50주년인 1995년 이후 항상 정치적인 문제로 환원되어 왔음을 평화 박물관, 종군위안부와 관련한 아사히신문의 보도 문제 같은 현재 진행 중인 사건들과 관련해 보여주었다. 발표는 이를 일본 정부의 사죄에 대한 반동으로 나타난 보수주의적인 전환 즉 1995년 체제, 전쟁 생존자의 죽음에 따른 전쟁 기억의 변화, 누구의 어떠한 기억이 오늘날 실제로 기억되고 있는가라는 세 가지 측면에서 검토하였다.
학술회의 둘째 날은 미국 소카대 황동연 교수의 발표 ‘중화인민공화국의 혁명, 항일전쟁과 제2차 세계대전 기념’으로 시작되었다. 발표는 중화인민공화국이 90년대 중반부터 항일 전쟁에서의 중국의 승리를 이차 세계대전에서의 파시즘에 대한 승리라는 더 넓은 맥락에서 기념하기 시작하면서 공산당과 국민당의 협력을 강조하기 시작했음을 보여주었다. 이에 따르면 이차 세계대전에 대한 이러한 새로운 기억은 중국 혁명에 대한 비판과 관련돼 있고, 혁명의 서사는 점차 내셔널리즘이나 애국주의로 대체되게 된다.
이어진 브라이튼대학 Lucy Noakes 교수의 발표는 ‘21세기 초 영국에서의 제2차 세계대전의 문화적 기억: ‘평범한 영웅주의’‘라는 주제로 이차 세계대전에 대한 영국의 기억이 나치즘에 홀로 맞선 영국이라는 국민적 정체성에 중요하게 작용해 오는 동안 전쟁의 다른 측면은 상대적으로 주변화되었음을 지적하며, 21세기 초 영국에서 독일의 공습과 같은 어려운 기억들이 어떻게 표상되는지를 논의하였다.
마지막 발표였던 플로리다주립대학 Kurt Piehler 교수의 ‘“좋은 전쟁”과 사라져 가는 태평양 전쟁의 기억’은 이차 세계대전의 기념과 기억이 미국의 세계적인 위치를 정의하는 데에 중요한 지표로 작용했음을 상기하며, 90년대에는 나치 독일 특히 홀로코스트에 대한 전쟁이 사람들의 기억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과는 달리 태평양전쟁은 기억 속에서 사라지면서 미국이 이 전쟁에서 국내외의 자유를 위해 싸웠다는 인식이 지배적이 되었음을 지적하였다. 태평양전쟁이 종종 애매하게 인식되었던 것과는 달리 나치와의 전쟁은 악과 싸우는 선이라는 서사에 더 잘 부합하는 것이었다.
이 학술회의에는 4개국 16명의 학자가 발표자 및 토론자로 참여하여, 각 나라에서 제2차 세계대전을 어떻게 그리고 왜 다르게 기억해 왔는지를 이해하고 대화하기 위한 장을 마련하였다. 겹쳐지고 또 경합하는 서로 다른 기억들을 둘러싸고 이틀 동안 이루어진 발표와 뒤이은 열띤 토론은 국민국가 패러다임의 한계를 극복하는 ‘트랜스내셔널 인문학’의 정립이라는 비교역사문화연구소의 목표를 다시금 확인하게 해주는 것이었다.
작성자: 심정명 HK연구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