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모두 집을 떠난다. 배우러 또는 일하러, 각자의 이유로 떠난다. 다만 매일 또는 매주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이들도 있고, 더 나은 기회 또는 유일한 기회를 따르다 보니 집을 떠나 돌아오지 못하는 이들도 있다. 노동의 이주는 대규모의 노동력이 필요해진 근대 산업사회와 함께 본격적으로 시작되었고, 제국주의 시기와 냉전기에 국가와 지역의 경계가 일시적으로 교란되거나 서로 획정되면서 더욱 확대되었다. 한국 혹은 한반도는 20세기에 세계에서 이주가 가장 활발하게 일어난 지역 가운데 하나였다. 한반도 거주민의 역내외 이주는 동아시아 지역의 사회변화를 추동하는 주도적인 힘 가운데 하나였다.
한양대 비교역사문화연구소에서는 한반도 거주민의 역내외 이주를 중심으로 동아시아 지역 ‘노동 이주’의 역사를 검토하는 학술회의를 개최하였다. 2차 세계대전 이전의 노동 이주는 강제성을 동반한 채 상당히 대규모로 수행되었으며, 이는 전쟁이 끝난 뒤 사회의 변화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냉전기에는 전체적으로 노동 이주의 규모가 축소되었지만, 역외로의 노동이주가 발전주의 국가 형성에 미친 영향은 지대한 것이었다. 탈냉전 이후 지구화시대의 노동이주는 한반도의 남북한에서 서로 방향을 달리한 채 역시 대규모로 전개되고 있다. 반도의 남쪽으로는 대규모의 노동인구가 유입되고 있으나, 북쪽에서는 노동자 해외파견이 주요한 수입원이 되고 있는 것이다.
지난 2016년 6월 3일 한양대학교 인문관 403호에서 열린 학술회의에서는 이와 같이 시대와 지역에 따라 다양한 양상으로 이루어졌던 노동 이주의 역사와 현상을, 구체적 사례를 중심으로 검토하였다. 첫 번째 발표자였던 일본 도쿄대학교 종합문화연구과의 도노무라 마사루(外村大) 교수는 “일본제국의 외지인·외국인 노동력 동원과 그 영향”을 주제로 일본 제국주의 세력권 안에서의 조선인과 중국인 등 다양한 노동력의 이동을 정리하였다.
이어진 발표들은 전후 시기에 초점을 맞추었다. 부경대 국제지역학부의 노용석 교수는 “라틴아메리카 한인 사회 형성과 공동체의 특징: 과테말라 사례를 중심으로”를 통해 지구 반대편 중남미로의 한인의 이주와 중남미 한인 사회의 분화, 그리고 중남미 한인 공동체의 특징을 분석하였다. 한성대 역사문화학부의 윤용선 교수는 “1960-70년대 광부·간호사의 서독 취업: 신화에서 역사로”라는 발표를 통해, 남한의 경제성장기 파독 노동자들의 이주를 국제정치의 논리에 따른 일방적인 시혜로 기존 관점을 비판하고, 그와 같이 윤색된 기억을 넘어서서 경제적 이해 관계에 바탕을 둔 상호적 과정으로 새롭게 이해할 것을 촉구했다.
과거에 일단락되었던 노동 이주 뿐 아니라 현재 새롭게 역사를 만들어 가는 노동 이주에 대해서도 발표가 이어졌다. 현재북한인권정보센터의 윤여상 소장은 “북한 노동자의 해외 파견노동”이라는 제목 아래 외화벌이를 위해 구 동구권과 중국 등지에 파견되어 있는 북한 노동자의 현황과 인권 실태 등을 살펴보았다. 관점을 바꾸어서, 경기외국인인권지원센터의 오경석 소장은 한국에 노동 이주를 온 외국인들의 이야기를 “아시아 이주 노동자의 ‘한국살이’: 현황과 쟁점”이라는 제목으로 다루었다.
마지막으로 한양대 비교역사문화연구소의 윤해동 교수가 “동아시아의 노동이주와 ‘지역’의 성격‘이라는 주제로 주요 쟁점들을 정리하고, 참석자 전원과 함께 종합토론을 진행하였다.
이번 학술회의는 과거와 현재, 학계와 시민단체, 한국으로부터의 이주와 한국으로의 이주, 아시아와 중남미와 동유럽과 서유럽 등 다양한 지역, 등 여러 가지 다른 범주를 넘나드는 발표들을 한 자리에 모아 엮음으로서 본 사업단이 표방하는 “트랜스내셔널 인문학”의 성격에 걸맞은 공동연구를 지향하였다. 이처럼 다양한 의견과 입장을 교환함으로써 이행의 시대 세계 노동시장의 재편의 방향을 추론해보고, 동아시아 지역의 바람직한 미래 비전을 구축하는 것을 향후 과제로 남기고 성공적으로 막을 내렸다. 학술회의에 참석한 연구자들은 학술회의의 성과를 단행본으로 발전시키기로 합의하고, 학술회의 현장의 의견들을 수렴하여 원고를 수정하는 과정에 착수하였다.
작성자: 김태호 HK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