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지금 우리는 “대이행”의 시대를 통과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인문학 연구자들이 처한 상황은 더욱 예사롭지 않다. 인문학 학사학위 소지자들이 취업 시장에서 소외되기 시작한 것은 오래 전의 일이다. 게다가 국내 대부분의 ‘인문학 대학원’ 역시 붕괴되고 있거나 크게 위축된 처지를 면치 못하고 있다. 십수년 이래 되풀이되어온 ‘인문학 위기’ 담론이 오히려 한가한 이야기로 들릴 지경이다. 이제 근대 이후 대학과 인문학이 맺어온 ‘밀월관계’가 공식적으로 종식을 고할지도 모른다는 예측이 설득력을 더하고 있다.
그럼에도 인공지능(AI)이 이끌고 있는, 문명의 ‘대전환’을 더욱 인간적으로 만들기 위해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인문학’이 아니겠는가? 대학에서 인문학 연구가 더욱 활성화되고, 좋은 연구자가 더 많이 배출되어야 할 이유는 충분하다. ‘대학원생 워크샵’은 대학원생들의 대학을 넘어선 교류와 소통을 통해, “학문후속세대”의 연구를 활성화하기 위해 만들어진 학문의 장이다. 바꿔 말하면 이제 막 학계의 문턱을 넘어서려는 신예 연구자들을 위한 발표와 교육의 장이 바로 ‘대학원생 워크샵’이다.
국내에서 대학의 벽을 넘어선 ‘대학원생 워크샵’이 실시되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 된 일이 아니다. 예컨대 본 연구소에서는 대학원생 국제워크샵을 2010년부터 “Flying University”라는 이름으로 4년 동안 시행한 바 있다. “횡단의 인문학 ‘벽’을 두드리다”라는 주제 아래 8월 19일에 실시된 이번 학술회의는, RICH가 주최하는 학문후속세대를 위한 두 번째 국내 워크샵이다. 최근에는 국내 주요대학에서 대학원생 워크샵을 실시하고 있다고 하니, 대학원생을 대상으로 한 학술회의가 정착하는 데에 RICH가 기여한 바가 적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번 학술회의에서는 모두 7명의 연구자가 ‘트랜스내셔널 역사학’과 관련된 주제의 발표를 진행하였다. 7명의 발표자는 모두 18명의 지원자 가운데서 선발되었다고 하니, 발표를 하기 위한 경쟁조차 만만치 않았던 셈이다. 발표자는 아직 석사과정에 재학 중인 사람부터 박사학위를 받은 연구자에 걸쳐 있었으며, 그런 이유와도 관련이 있겠는데, 발표의 형식이나 완성도 면에서도 일정한 격차가 드러나고 있었다. 주제 역시 영주권자 자원입영 문제나 여권제도 등 트랜스내셔널한 측면을 직접적인 대상으로 삼은 연구에서부터 한일, 한중일 혹은 중일, 일소 간의 소통이나 교류, 갈등 등의 문제를 다룬 연구까지 넓은 영역에 걸쳐 있었다. 또한 이번 학술회의를 위해 주최 측에서는 전문적인 코멘트가 가능한 전문연구자를 발표자별로 탐색하여 초빙하였는데, 이는 높이 살만한 일이라고 하겠다.
무릇 대학원생 워크샵은 신예 연구자들이 연구자로서의 시민권을 획득해나가는 중요한 절차 가운데 하나가 되어야 한다. 이 제도가 그런 역할을 온전히 수행하기 위해서는, 발표자 선정과정에서 미리 발표의 수준을 조정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발표자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전문적인 코멘테이터를 분야별로 배치하면 더욱 좋을 것이다. 이런 여러 준비과정을 통하여, ‘엉뚱한 착상’이나 ‘오류에 가까운 참신한 상상’이 토로될 수 있는 발표의 장, 그리고 그런 ‘미완의 의도’가 올바른 길로 인도될 수 있는 토론의 장으로 더욱 발전해나가기를 비는 마음 간절하다.
작성자: 윤해동 HK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