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21일(토), <서학과 동학, 내포의 물길을 가로지르다>라는 주제 하에 제2회 <트랜스내셔널 인문학 시민답사>가 개최되었다. 한낮의 기온이 30도에 육박하는 초여름 날씨였지만, 상쾌한 봄바람도 불어 행사가 진행되는 데 큰 어려움은 없었다. 이번 시민답사의 전체 참가인원은 41명(일반시민 36명, 연구소 인력 5명)이었다.
오전에는 ‘가장 아름다운 성당’으로 지정된 바 있는 공세리성당, 그리고 프란치스코 교황이 방문하여 새삼 유명해진 김대건생가 일대를 둘러보았다. 식민지시대의 정취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공세리성당은 본당 건물 자체만으로도 충분한 볼거리가 되었다. 본당을 바라보고 오른쪽으로 펼쳐진 너른 물줄기는 이곳이 ‘내포’임을 실감케 했으며, 본당 뒤편의 박물관은 답사에 깊이를 더해 주었다. 한편, 김대건생가에서는 교황 방문의 임팩트를 절감할 수 있었다. 생가 전면에 배치된 교황 오브제는 특히 눈길을 끌었다. 기타 서학 관련 유적지에서도 1984년 성 바오로 2세의 방문 흔적과 더불어 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 방문의 여운을 느낄 수 있었다.
오전 답사를 마친 후, 일행은 당진의 한 향토식당에서 꺼먹지 정식으로 허기를 달랬다. 꺼먹지는 절인 무청을 일컫는 당진지역의 방언이라고 한다. 꺼먹지 콩비지를 비롯하여 정갈하게 차려진 시골밥상을 깨끗이 비우고, 일행은 다시 여정을 이어갔다.
오후에는 우선 합덕수리민속박물관에 들러 내포지역의 지형적 특징을 확인하고, 이어서 바로 옆에 위치한 합덕성당으로 향했다. 합덕성당에서는 김성태 주임신부가 맛깔스러운 사투리를 섞어가며 성당의 역사를 상세히 짚어주었다.
다블뤼주교유적지에서는 박성묵 예산역사연구소장이 합류하여 이후의 여정을 함께 했다. 최근에 새로 단장을 마친 주교관 앞에서는 조선시대 최대의 교우촌이 위치했던 신리지역의 특수성, 서학과 동학이 교차하던 19세기의 상황에 대해 상세한 해설이 이루어졌다. 초가집풍의 주교관을 기점으로 이제 일행은 동학의 길로 발걸음을 옮겼다.
우선 일행은 내포지역의 최대 접주였던 박인호의 유허비를 방문했다. 박성묵 소장은 지역사회에서 구전되는 일화 등을 소개하며 동학농민운동기념사업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번 답사에서는 굳이 들르지 않았지만, 박인호의 생가 터는 현재 축사로 쓰이고 있는 상태이며, 이렇다 할 표식도 갖추어져 있지 않다. 단정한 모습을 갖추고 있는 서학 관련 유적지와 텅 빈 공간으로 남아 있는 동학 관련 유적지의 엇갈림은 기억과 기념의 정치학을 새삼 떠올리게 하였다.
마지막 목적지인 홍주읍성에서는 동학농민군의 읍성 포위작전, 읍성 인근에서 발굴된 유골의 수습과정 등에 대한 해설이 이루어졌다. 특히 의병 기념사업에 주력하고 동학농민운동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관심이 옅은 홍성지역의 집단심성에 대한 해설은 눈길을 끌었다. 보다 엄정한 검증작업이 필요하겠지만, 동학농민군의 유골이 의병의 유골로 둔갑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은 충격적이었다. 재구성으로서의 역사에 내재되어 있는 불편한 진실에 맞닥뜨린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홍주읍성을 떠나 해산장소인 양재역에 도착한 것은 저녁 8시 30분이었다. 능숙한 운전기사님 덕분에 이렇다 할 정체도 겪는 일 없이 대략 2시간여 만에 내포를 가로질러 서울로 돌아왔다. 예정시간보다 1시간가량 지체되었지만, 일행의 얼굴에서는 피곤한 기색을 찾을 수 없었다. 가을 답사를 기약하며 일행은 아쉬운 발길을 돌렸다.
사업의 지속적인 발전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시민답사 종료 후에는 ‘어떤 경로를 통해 이번 답사에 대해 알게 되었는가?’, ‘이번 답사에서 불편한 점은 없었는가?’라는 항목의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이 설문조사의 결과에 따르면, 참가자들의 만족도는 매우 높았다. 특히 사전에 준비된 답사자료집, 연구소 인력 및 현지 향토사학자 등에 의한 상세하면서도 알기 쉬운 해설은 높은 평가를 받았다. 답사코스의 선정과 시간배분에 좀 더 주의를 기울인다면, 향후 사업의 전망은 밝다고 생각한다.
작성자: 이세연 HK연구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