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22일(토), 제3회 트랜스내셔널 인문학 시민답사 “기억과 망각의 철원, ‘경계’와 마주서다”가 개최되었다. 일반시민 31명이 참가했으며, 행사진행을 위해 연구소 스텝 3명, 해설을 위해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의 박동찬 선임연구원이 동행했다.
청명한 가을하늘을 마주하며 여정에 나선 일행은 우선 연천에 위치한 38선 경계석에 들렀다. 38선과 군사분계선에 얽힌 일화, 전쟁사에서 3번 국도가 차지하는 위상에 대한 해설을 듣다 보니, 주변의 지형과 산세가 새롭게 다가왔다.
첫 번째 답사지인 백마고지 전적지에서는 백마고지전투에 관한 해설은 물론, 주변 고지에서 벌어진 전투에 관해 상세한 해설을 들을 수 있었다. 한국전쟁 당시의 이야기는 이내 통일 이후의 상황에 대한 이야기로도 이어졌는데, 특히 DMZ를 중심으로 한 철원군 일대에는 토지분쟁의 소지가 많다는 이야기가 무척 인상적이었다. 통일은 참으로 다양한 층위에서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는 점이 새삼 실감되었다.
예정보다 시간이 많이 지체되어 백마고지 전적지를 나설 때는 어느덧 12시 반이 넘어서고 있었다. 그래서 일행은 일정을 조정하여 우선 허기를 달래기로 했다. 일행은 문혜리에 위치한 대득봉이라는 향토식당을 방문했다. 산채무침과 더덕구이를 중심으로 깔끔한 한상이 차려져 있었다. 철의 삼각지 기념관과 고석정을 지나서도 10여 분을 달려 도착한 식당이었는데, 다리품을 팔 만한 맛이었다.
점심을 마친 일행은 서행하는 버스 안에서 승일교의 전경을 감상한 후, 구 철원제일교회로 발길을 재촉했다. 그곳에서는 운 좋게도 이상욱 담임목사의 상세한 해설을 들을 수 있었다. 해설 도중에는 교회의 예전 모습을 담은 사진 등 귀중한 자료도 관람할 수 있었다. 본인의 고향은 평북이며 통일 후 북한지역에서 마지막 목회활동을 꿈꾼다는 이상욱 목사의 이야기는 철원이 ‘경계’의 땅임을 새삼 각인시켜 주었다.
구 철원제일교회에서 기념사진을 촬영한 후 일행은 지근거리에 있는 구 노동당사를 방문했다. 현재의 철원이 옛 북한 땅이었음을 상징하는 건물이라는 평가에 걸맞게, 구 노동당사는 상당한 흡입력을 지니고 있었다. 박동찬 연구원은 1956년도 판 철원군 지도를 제시하며 노동당사를 중심으로 펼쳐졌던 구 철원시가지의 모습을 임장감 넘치게 해설해 주었다.
일행은 이어서 구 노동당사 옆에 위치한 DMZ 초소로 향했다. 6사단 측에 미리 협조를 구해놓은 터라 DMZ 출입절차는 신속하게 처리되었다. 일반적인 ‘안보견학’은 <제2땅굴→평화전망대→구 월정리역사>의 순으로 진행되지만, 일행은 <평화전망대→구 월정리역사→구 제2금융조합/얼음창고/농산물검사소> 순으로 답사했다.
DMZ 답사에서는 특히 구 노동당사 쪽 초소 출구 근처에 위치한 구 제2금융조합/얼음창고/농산물검사소가 인상적이었다. 일행은 구 제2금융조합 도로변에서 하차하여 농산물검사소까지 도보로 이동하며 이들 유적지를 둘러보았다. 그곳에는 식민지시기, 북한통치시기, 한국전쟁기의 흔적과 역사가 고스란히 쌓여있었다. 때마침 잦아들던 햇살은 처연함과 무상함을 더해 주었다. 그렇게 기억과 망각 사이를 거닐던 일행은 이내 서울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번 답사에 참가한 일반시민 31명 가운데 18명은 예전에 개최되었던 시민답사에 1번 이상 참가했던 분들이었다. 대략 58%에 달하는 수치로, 이는 트랜스내셔널 인문학 시민답사가 연구소의 사회화사업으로 순조롭게 자리잡았다는 점을 시사한다. 그런 만큼 앞으로는 트랜스내셔널 인문학이라는 연구소의 아젠다를 좀 더 부각시킨 차별성 있는 프로그램을 강구해도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작성자: 이세연 HK연구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