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양대학교 비교역사문화연구소와 푸른역사아카데미는 오는 10월 24일부터 11월 21일까지 화요일 저녁 7시30분~9시30분에 ‘위기의 한반도: 다시 보는 한국전쟁‘을 주제로 시민강좌를 개최합니다.
2017년에 들어서 북한이 연이어 미사일을 발사하면서 한반도에서는 또다시 전쟁의 위기가 고조되고 있습니다.
지금도 계속되는 전쟁 위기의 근본적 원인은 1950년에 발생한 한국전쟁에서 비롯되었습니다.
한국전쟁은 국제적으로 냉전체제가 출현한 이후 최초로 발생한 열전(熱戰)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전쟁은 공식적으로 종전되지 않았고, 전쟁의 결과 탄생한 정전체제가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번 강좌는 정치사·전쟁사를 넘어서 한국전쟁의 구조적 원인, 한미관계, 전쟁과 문화매체, 폭격의 군사정치학을 탐구하고자 합니다.
강연료는 무료이며, 일반 시민 누구나 신청하실 수 있습니다.
많은 관심과 참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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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랜스내셔널 인문학 시민강좌 Ⅶ
<위기의 한반도: 다시 보는 한국전쟁>
■ 강연 일정 (화요일 저녁 7시30분~9시30분)
- 10월 24일(화) | 한국전쟁, 피할 수 없는 전쟁이었나
강사: 김계동 건국대 초빙교수
강연요지:
1. 한국전쟁의 기원: 누구의 전쟁이었나, 누구의 책임인가?
2. 서방진영의 개입: 미국은 왜 전쟁에 개입하였는가? 국제평화기구인 유엔은 왜, 어떻게 개입을 했는가?
3. 유엔군의 38선 이북 진격은 바람직했는가?: 유엔군의 참전목적은 38선까지인가, 한반도 전체의 점령인가?
4. 중국군의 개입은 불가피했나?: 중국의 참전이유와 목적은 무엇인가? 왜 중국은 한국전쟁을 ‘항미원조전쟁’이라고 부르는가?
5. 1951년 6월에 시작된 휴전협상은 왜 2년이 넘게 계속되었는가?: 휴전협상의 최대쟁점은 무엇이었나? 포로의 강제 송환과 자발적 송환은 전쟁을 지연시킬만큼 중요했나? 이승만의 휴전반대는 전쟁을 지연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는가?
- 10월 31일(화) | 한국전쟁과 한미관계
강사: 박동찬 한양대 사학과 강사
강연요지:
1948년 8월 15일 임시군사고문단으로 출발해 1971년 4월 1일 주한미합동군사원조단에 통합될 때까지 약 23년간 한국에 존재했던 미국의 군사자문기구인 주한미군사고문단(U.S. Military Advisory Group to the Republic of Korea: KMAG)을 통해 한국전쟁과 한미군사관계의 내용과 변화과정을 살펴보고자 한다. 주한미군사고문단은 한국군에 대한 자문활동과 한국에 제공되는 군사원조의 계획수립 및 원활한 집행을 감독하는 것을 주요 임무로 하였다. 그들은 냉전의 형성 및 전개과정에서 미국정부의 대한정책 구상을 현지에서 구현하는 ‘집행기구’의 역할과 동시에 한국 정부의 의견 및 동향을 수렴해 이를 본국에 전달하는 ‘전달자’의 역할을 담당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 종전된 후 미국의 대외군사정책에 따라 그리스·터키·이란에 이어 4번째로 설립된 고문단이 주한미군사고문단이었으며, 이러한 군사고문단의 설치는 유럽 중심의 냉전(Cold War)이 중동과 아시아로 확대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하나의 중요한 사례였다. 따라서 군사고문단을 통해서 우리는 세계 냉전의 형성과정과 그 과정 속에서 발생한 국지적 열전인 한국전쟁의 원인과 배경, 과정, 결과 등을 종합적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 11월 7일(화) | 시각화된 구원, 시각화된 파괴: 전쟁사진
강사: 강성현 성공회대 동아시아연구소 교수
강연요지:
사진은 그 어떤 매체보다도 시각적으로 대상을 직접 보여줌으로써 사진에 담겨 있는 장면이 곧 진실이라고 믿도록 하는 힘이 강하다. 그러나 사진은 실상 특정 시각에서 바라본 것만 보여줄 뿐만 아니라 전체 현실 중에서 특정 부분만 선택하여 보여주는 것임을 주지할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해 ‘사각(死角)’이 존재하며, 또 다른 어떤 현실은 감춰진다. 한국전쟁에 대한 기억에서 가장 강력한 이미지 가운데 하나가 미군과 유엔의 구원 이미지이다. 공산악마의 침략을 심판하고 한국을 군사적으로 구원하러 온 하나님의 십자군 미군과 유엔이라는 이미지와 한국에 대한 인도주의적 구호와 경제 원조 및 재건에 힘쓰는 구세주 미군과 유엔이라는 이미지가 강력하게 자리하고 있다. 그런데 구원이라는 시각화된 이미지의 실체는 무엇일까? 그리고 그 사각은 무엇일까?
- 11월 14일(화) | 한국전쟁기 미디어의 이해
강사: 김영희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객원교수
강연요지:
한국전쟁이라는 비상한 상황에서 전개된 한국 사회의 미디어 현상 전반을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하려고 한다. 이를 위해 세 차원으로 접근해 핵심 내용을 중심으로 설명한다.
첫째, 남한 사회에 전개된 미디어의 성격 형성에 영향을 미친 요인으로서 전쟁기간 이승만정부의 언론정책.
둘째, 전쟁 이전부터 존재했던 기존 미디어들이 전쟁기간 어떤 변화를 겪으며 어떤 양상으로 전개되었는지 설명. (1) 전쟁발발 소식은 어떻게 전해지고, 사람들은 어떻게 대응했는가? (2) 서울지역 신문의 수난과 부산지역 신문의 발전 (3) 국영 중앙방송 운영과 편성 프로그램 (4) 전쟁기간 출판 산업과 잡지 발행.
셋째, 전쟁발발과 함께 한국을 대상으로 운영한 미국과 북한의 미디어들. (1) 미국의 심리전 방송 운영 - VOA 한국어방송과 유엔군총사령부방송(VUNC) (2) 미국과 북한의 삐라 심리전 (3) 북한이 남한 점령기간 발행했던 대표적인 미디어 <조선인민보>와 <해방일보>.
- 11월 21(화) | 한국전쟁과 폭격
강사: 김태우 한국외대 한국학과 교수
강연요지:
2017년 9월, 미국 대통령 트럼프는 북한 정권을 향해 다음과 같이 경고했다. “미국과 동맹을 방어해야 한다면, 우리는 북한을 완전히 파괴하는(totally destroy) 것 외에는 다른 선택이 없다.” 북한의 잇단 군사적 도발에 대한 초강경 대응을 시사한 발언이다. 실제 미국은 연일 B-1B 전략폭격기를 한반도 상공에 출격시키면서 북한에 대한 군사적 위협을 가중시키고 있다. 트럼프의 말처럼 1950~53년 북한지역은 완전히 초토화되었다. 북한지역을 향한 폭격은 전쟁 발발 직후부터 정전 시점까지 쉬지 않고 지속되었다. 특히 1950년 11월 소위 ‘초토화정책(scorched earth policy)’이 채택된 이후부터는 민간지역 자체가 공식적 군사목표로 간주되면서 북한지역의 모든 도시와 농촌이 철저하게 파괴되기 시작했다. 이 강의는 한국전쟁 초기 3개월 동안의 북한지역 ‘정밀폭격정책’의 채택 배경과 추진 과정, 1950년 11월 초토화정책의 실상, 정전협상기 철도차단작전과 항공압력전략의 결정 과정과 민간인 희생 구조 등에 대해 살펴볼 것이다. 당대 미국 문서와 사진을 통해 폭격의 실상과 전쟁의 비극적 참상을 생생히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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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강신청: goo.gl/forms/jVELETvnoVVyCYEH2
■ 장소: 푸른역사아카데미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 7번 출구에서 도보로 8분 거리)
■ 수강료: 무료
■ 문의: 070-7539-48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