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연구소에서 진행한 행사 가운데서 모처럼 해외 교포를 대상으로 한 연구발표가 진행되었다. 해외에 거주하는 교포는 그 존재 자체로서 트랜스내셔널한 측면을 갖고 있으므로, 어쩌면 본 연구소의 연구지향과 가장 잘 어울리는 대상 혹은 주제일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2017년 11월 17일(금) <자이니치의 정신사 : 남ㆍ북ㆍ일 세 개의 국가 사이에서>라는 이름으로 연구소 콜로키움이 진행되었다. 윤건차 가나가와(神奈川)대학 명예교수가 한국에서 출판한 8번째 책인 『자이니치의 정신사』(박진우 외 역, 한겨레출판, 2016)를 두고 벌인, 서평회를 겸한 토론회 자리였다.
잘 알다시피 윤건차 교수는 일본 근대사상사, 한국 현대사상사, 근대한일관계사, 재일조선인사 등에 관한 다수의 글과 책을 발표하였고, 이를 통해 일본만이 아니라 한국의 인문사회과학계와 지성계에도 큰 영향을 미쳐온 석학이다. 이번 책은 윤교수가 대학에서 정년퇴직한 이후 그의 삶과 이력을 정리하는 의미를 겸하여, 재일조선인의 ‘정신사’를 세련되게 정리한 대작이다. 윤교수 본인은 이 책이 그런 점에서 학술논문이면서 이야기(物語)이기도 하다고, 자신의 책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다.
토론회의 冒頭에서 윤교수는 자신의 生平과 책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자신은 “인생의 근저에서 고통을 견뎌내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지만, 근본적으로 패배감을 자각하는 것이 부족했다”고 자책했다. 그는 패배감과 좌절감을 구분하면서, 근본적인 의미에서 주체성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패배감을 자각할 필요가 있을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이를 받아 첫 번째 토론자 권혁태 교수(성공회대)는 이 책이 취하고 있는 ‘사회인문적’ 글쓰기가 자이니치의 역사적 ‘연루’를 적절하게 그려내는 뛰어난 글쓰기 방식이라는 점을 지적하였다. 하지만 ‘정신사’라는 개념이 가진 모호함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는 과제로 남는다고 아쉬움을 남겼다. 두 번째 토론자 윤해동 역시 이 책이 취하고 있는 글쓰기 방식의 실험성에 대해서 높이 평가하였다. 하지만 필자 스스로가 말하는 ‘패배감의 자각’이란 바로 ‘탈식민주의’와 연결된 것이 아닌가, 탈식민주의야말로 이 책을 뒤덮고 있는 어두움과 우울함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작성자:윤해동(HK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