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연구소 트랜스내셔널 인문학 사업단은 ‘근대/전근대’, ‘서구/비서구’, ‘민족’, ‘국가’ 혹은 ‘영토성’ 등의 범주와 경계를 당연한 것으로 전제하여 온 기존 인문학/사회과학의 틀을 지양한다. <트랜스내셔널인문학 콜로키움>은 이들 범주를 문제화하는 맥락적이고 비판적인 트랜스내셔널 관점과 이를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경험 연구들을 소개하는 데에 그 목적을 두고 있다. 2단계 2차년도 콜로키움(2012년 2학기에서 2013년 1학기까지)의 주제는 <트랜스내셔널 관점에서 본 '제국' (Empire in Transnational Perspectives)>이다.
콜로키움의 첫 번째 강연자는 김한규 교수(서강대 사학과)였다. 김한규 교수는 지난 수십 년간 ‘중국적세계질서’ ‘동아시아 막부체제’ ‘천하국가’ 등에 관한 연구를 통해 전통시대 동아시아 세계의 ‘제국적’ 질서를 이해하는 틀을 제시하여 왔다. 그리고 ‘한중관계사’ ‘요동사’ 등의 저작을 통해, 지난 세기 말부터 문제시되어 온 ‘민족(국가)’를 단위로 한 역사서술(‘국사’)에 대한 대안으로서 ‘역사공동체론’을 주장하기도 하였다. 이번 강연의 제목은 <이상과 현실의 공존: 한 제국과 중국의 사이>로서, 토론은 중국 선진 진한사 분야에서 탁월한 업적을 쌓아 온 김병준 교수(서울대 동양사학과)가 맡았다.
중국 고대사 전공자 외에도 많은 청중이 참여한 가운데, 강연은 시종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분위기 속에서 이루어졌다. 400년 가까이 이어진 한(漢)왕조의 시기구분 문제로부터 시작하여, 최초의 제국 진(秦)의 성립과 몰락, 한무제(漢武帝) 시기의 성격, 염철회의(鹽鐵會議), ‘기미지의(羈縻之義)’에 이르기까지, 이야기는 황제국가가 지향한 이상적 통치 형태와 현실에서의 좌절과 타협에 초점이 맞추어졌다. 그리고 김병준 교수의 성실하고 날카로운 질문을 시작으로 청중도 함께 참여하는 토론시간이 이어졌다. 팽팽한 긴장감과 폭소가 교차하는 시간들이 빠르게 지나가고, 결국은 정해진 시간을 훌쩍 넘겨 행사는 막을 내렸다.
이번 강연과 그에 대한 토론은 고대 ‘황제국가(皇帝國家)’의 성립 과정과 그 성격에 관하여 많은 생각할 거리들을 제시하였다. 특히 현재 ‘중화인민공화국’을 중심으로 만들어지고 있는 역사분쟁들이 ‘한제국과 중국의 사이’에 있었던 문제들과 그리 멀지 않다는 지적은 깊이 새겨둘 만하다. 그리고 전체 주제에 비추어 가장 흥미로운 부분 가운데 하나는 ‘번역어’가 되기 이전 동아시아 ‘제국’의 개념을 재고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는 데에 있다고 생각된다. 즉 ‘엠파이어(empire)’의 번역어로서의 ‘제국’과 ‘황제국가’를 의미하는 ‘제국’ 사이의 거리를 측정하는 일 또한 의미 있는 연구과제가 되리라 여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