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학년도 1학기의 첫 번째 “저자와의 대화”의 주인공은 미국 Texas A&M University의 김회은 교수였다. 토론은 박진경 교수(한국외국어대학교)와 김태호 교수(한양대학교 비교역사문화연구소)가 맡았다.
김 교수는 박사학위 논문에 바탕을 두고 2014년 펴낸 Doctors of Empire를 중심으로 자신의 연구 이력을 소개하였다. 그는 우선 “일본 근대 초기에 도일하여 활동했던 독일인 의사들과 독일에 유학했던 일본인 의학도들”이라는 중요하지만 어려운 주제에 도전한 경위를 설명하였다. 미국 유학을 떠날 무렵에는 자신의 개인사와 가족사에 얽힌 실존적 의문들을 우회적으로 해명하기 위해 독일사를 선택하였으나, “한국인에게 독일은 무엇인가” 또는 “한국에서 왜 독일이 중요한 나라가 되었는가”라는 당초 품었던 질문은 독일사의 틀 안에서는 온전히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고 한다. 따라서 결국 한국과의 접점을 본격적으로 직면하지 않으면 자신이 추구하는 답을 얻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 아래 근대 일본의 형성 과정에 독일이 수행한 역할을 연구하게 되었다고 김 교수는 회고하였다. 또 하나의 배경은 (미국)학계의 트랜스내셔널 역사학 연구 동향이 적극적으로 발언하는 일부 화자 집단에게만 집중되는 경향이 있다는 데 대한 반성이었다. 과대 대표되는 이들 일부 집단에 가려 침묵을 강요받은 타자들을 다시 역사의 무대로 데려오려면, 일본이나 독일에서 성공적인 교류 성과를 남긴 이들 뿐 아니라 크게 성공하지 못했거나 실패한 이들의 목소리도 다시 발굴해 내야 한다는 것이 김 교수의 기획이었다.
이러한 생각을 바탕으로, 김 교수는 일본과 독일 사이에 일어난 사람들의 트랜스내셔널한 이동에 주목하고, 독일이 일방적으로 일본의 근대를 형성했다는 관점 대신 일본의 능동성을 강조하는 포스트콜로니얼 서사를 택했으며, 구체적이고 정량적인 자료를 통해 유학생 집단의 행적을 추적하는 인물집단 연구(prosophography)를 시도하였다. 그리고 연구 결과 일본 의학계가 근대로 이행하는 과정을 난학 전통의 연장, 독일 의학계와의 양방향적 교류, 독일 유학파들이 일본 안에서 후진을 양성하는 토착화 단계 등 세 단계로 나누어 볼 수 있으며, 이 각각의 단계가 독일의 일방적인 주도 또는 일본의 정치적 결단에 의해서가 아니라 일본 의학계의 필요와 이해에 조응하는 방식으로 전개되었음을 보였다. 나아가 독일 유학파도 균질한 집단으로 볼 수 없으며, 이러한 내부의 이질성이 이후 일본 의학의 발전 과정에 어떤 동력으로 작용하고 뒷날 한반도와 대만 등의 식민지에는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도 살펴 보고 있다. 김 교수는 이와 같은 상호연결성(interconnectedness)에 주목함으로써 개별 국가만을 보았을 때 드러나지 않던 인물과 지식의 흐름이 드러나고, 나아가 연결된 주체들 내부의 복잡성과 이질성이 드러나 궁극적으로는 “과학기술의 전파” 또는 “과학기술의 도입/학습”과 같은 일방향성 모형의 한계를 극복하는 길을 열어줄 수 있으리라 전망하였다.
김회은 교수의 신간은 독일사와 일본사 전공자에게는 물론, 한국 근현대사 연구자들에게도 흥미로운 도전이 될 것이다. 근대 한국의 과학기술-의료사, 나아가 한국 근현대사(의 중요하지만 깊이 연구되지 않고 분야사로서 격리되어 있었던 부분들)를 입체적으로 이해하려면 일본에 대해서도 충분히 알아야 한다는 것이 이 책을 둘러싼 토의를 통해 다시 한번 부각되었으며, 일본에 대해 깊이 이해하려면 역시 일본 안의 이야기에 매몰되지 않고 일본과 영향을 주고 받은 나라들에 대한 진지한 탐구가 필요하다는 것도 재확인되었다. 요컨대 트랜스내셔널 연구의 필요성과 미덕을 다시 한번 설득력있게 보여준 것도 이 책이 한국 근현대사 또는 동아시아 근현대사 연구자들에게 던지는 과제라 할 것이다.
작성자: 김태호 HK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