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
공공영역은 근대시민사회의 요구를 반영하는 공간으로서 시민과 정부사이의 주요 매개역할을 하며 의회민주주의의 이론적 토대를 마련한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식민지에서는 공공영역이 존재할 수도 없고 상상할 수도 없다. 그 이유는 바로 식민지라는 특수한 상황에서는 ‘합리적인’ 피식민지 주민들이 존재할 수 없으며 극심하게 서열화된 제국주의 세계관은 제국주의적 통치의 대상들을 무조건 미완성의 인간으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하버마스 이론에서는 공공역역의 이론적 설립조건이 근대적인 개개인들이 집합하여 서로 동등한 위치에서 합리적인 의사소통을 성사하는 것인데 식민지 언론에서 설정한 ‘미완성’된 피식민지 주민들은 그러한 위치에 서있을 수 없다. 그러나 식민지 조선에서는 실제로 근대매체가 확충되었으며 수많은 신문잡지들을 통해서 활발한 공적 담론들이 형성되었다. 서구적 근대공공영역이 불가능한 식민지 조선에서 발행한 공적담론들을 과연 어떻게 봐야할까?
식민지 조선의 언론의 성격을 규정하기 위하여 ‘식민지 공공영역’의 의미를 새로운 각도에서 고려할 필요가 있다. 피식민지 주민들 사이에서는 서구적 근대와 달리 개개인이 주체가 될 수 없으므로 ‘대안적 합리성’을 바탕으로 식민지 공공영역이 작동하였다고 볼 수 있다. 식민지 공공영역의 ‘대안적 합리성’을 잘 보여주는 개념은 바로 민도(民度)이다. 민도는 특정 민족의 문화와 생활수준을 가리키는 말인데 식민지당국자들의 사료를 검토하면 “時勢及民度”라는 관례적 용어가 자주 등장한다. 이것은 식민지 당국자들이 외지 (外地)와 내지(內地)에서 동등한 법제, 교육과 복지제도를 실시하지 못하는 불가피한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 사용된 용어이며 경제와 문화적인 격차로 인해 식민지 조선에서는 반드시 내지와 별도의 정책이 필요하다는 핵심 논리이다. 그러나 민도는 식민지 당국자들만 사용하는 관례적 용어가 아니라 피식민지 주민들 사이에서도 널리 내면화 되어있었다. 특히 조선이 왜 망하고 식민지로 전락했는지, 그리고 조선인들은 왜 문화적 낙후성 때문에 근대적인 국가설립에 실패했는지 설명할 때 자주 등장한다.
조선인들 사이의 민도담론을 단순히 패배적인 사고방식만 전파했다는 식민지 지배자들의 논리에 한정한다면 식민지 공공영역의 성격을 쉽게 규정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민도담론의 작동 메카니즘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복잡다단한 면을 발견할 수 있다. 식민지 언론에서 활동한 조선 지식인들은 조선인들의 민도가 너무 낮다고 한탄하는 반면 식민지 당국자들에게 교육과 평등한 기회제도의 제공을 요구하며 ‘민도향상’을 지향하였다. 그리고 턱없이 부족한 식민지 조선의 공공시설의 증축을 요구하게 되는데 이것은 제한된 식민지 당국의 예산편성과정에서 개입하려는 시도이며 종종 식민지 정책에 대한 상당한 불신으로 표출되었다. 이 과정에서 계급적인 요소도 나타나는데 조선인 지도층은 조선의 민도가 너무 낮다는 이유로 내지와 같은 기준으로 세금을 내는 것을 거부하며 농촌사회의 개선안을 반대한다. 결국 민도라는 개념은 조선인들이 전유함으로서 그 의미를 재구성함에 따라 여러 양상으로 형성되었다고 할 수 있으며, 이것은 때로는 식민지 당국자들에게 강력한 비판을 할 수 있는 지렛대가 되기도 하고 방어적 도구로 사용되었다. 그런 면에서 식민지 공공영역은 제한된 범위 내에서 상당이 역동적이었다고 봐야할 것이다.
식민지말기 전시총동원체제 하에서는 조선인들의 민도가 급속히 향상되었다는 논리가 부상하며 민도담론이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된다. 이것은 내선일체, 의무교육, 내지연장, 징병제, 징용제와 직결되는데 과거에 민도가 너무 낮아서 황국신민의 자질이 없었다고 단정된 피식민지 주민들이 갑작스럽게 그 자격을 부여받게 되었다. 조선인들의 민도가 향상되어서 드디어 근대적인 인간이 될 수 있다고 미사여구로 극찬한 식민지 말기의 언론은 조선인들이 전시체제에 깊숙이 편입시키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식민지 공공영역은 결국 근대적인 공공영역으로 변화하며 국민통합, 국가에 대한 자발적 봉사, 애국심을 연출하는 공간으로 작동하였다. 식민지 공공영역의 고찰은 제국과 근대국가의 경계선을 잘 보여주며 근대라는 미명하에서 대중들의 욕망을 이용하며 “동의”와 “동원”이 어떻게 창출될 수 있는지 좋은 사례를 제공한다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