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연초록:
이 책은 하나로 엮기에는 어울리지 않는 세 도시 베를린, 도쿄, 서울을 다룬다. 베를린과 도쿄는 소위 ‘위로부터의 근대화’를 이룩한 후발 제국의 수도라는 공통점을 지닌 데 반해, 도쿄와 서울은 오랜 역사적 인연을 지닌 동일 문화권 안의 제국-식민지 관계였다. 별 관련이 없어 보이는 서울과 베를린이 하나로 엮일 수 있는 것은 제국 일본이 수도였던 도쿄를 매개로 하나의 독특한 지리적 상상이 시간과 공간의 장벽을 뛰어넘어 영향력을 행사했기 때문이다. 고대 그리스에 대한 가히 종교적인 동경이 프로이센 왕국의 수도였던 베를린을 상상의 아테네로 만들었고 이는 지구 반대편에 위치한 일본이 제국의 수도 도쿄를 상상하는 모델이 되었으며, 종국에는 일제 식민지가 된 조선의 수위도시 경성에까지 지울 수 없는 흔적을 남겼다. 이 책은 한 나라의 수도를 창조하는 데 있어 특정한 지리적 상상과 결부된 기억 행위가 주요하게 작용한다는 점을 도시공간의 건축적 재현을 통해 규명한다. 건축은 공학적 기술이기에 앞서 하나의 담론이자 정치적 테크놀로지이다. 대륙을 뛰어넘어 얽힌 근대수도의 계보학은 도시 간의 관계사나 영향사를 넘어 건축적 재현 등 도시에 대한 담론의 형성에 주목한다는 점에서 엄밀한 의미의 문화사적 접근이다.
저자약력:
부산대학교 사회교육과 교수. 고려대 사학과 및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독일 베를린 훔볼트 대학에서 독일 현대사학사를 연구하여 박사학위를 받았다. 전공 영역은 독일 현대 지성사 및 문화사, 역사이론 등이다. 역사적 시간성, 기억과 미적 재현, 트라우마와 인권, 그리고 도시공간의 시각적 구성 문제를 탐구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역사가 기억을 말하다>, <박물관의 탄생>, <보수 혁명: 독일 지식인들의 허무주의적 이상>, <서독 사회사 연구의 기원>, <삶은 계속되어야 한다: 원폭 2세 환우 김형률 평전>이 있다. 공저로는 <기억과 전쟁: 미화와 추모 사이에서>, <유엔기념공원과 부산: 국제평화도시의 환상을 넘어>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