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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보도] [경향신문 2013.02.22] [명저 새로 읽기] 제프리 올릭 '기억의 지도' | |
ㆍ과거청산, 책임윤리에 기반한 ‘후회의 정치’를 위하여
“권력에 저항하는 인간의 투쟁은, 망각에 저항하는 기억의 투쟁”이다. 권력에 저항하기 위해서는 기억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사실을, 밀란 쿤데라는 <웃음과 망각의 책>에서 촌철살인으로 환기해주었다. 여기서 밀란 쿤데라가 말하는 권력에 저항하는 기억이란 집단기억을 말한다. 이에 반해 니체는 <반시대적 고찰>이라는 저작에서 ‘역사의 과잉’은 인류를 파괴할 것이라고 보았다. “과거가 현재의 무덤을 파게 하지 않으려면 과거를 잊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민족이 자기를 구성하는 방식, 곧 민족주의의 핵심에는 망각이 자리잡고 있다는 에르네스트 르낭의 지적 역시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그렇다면 기억과 망각은 어떤 관련을 맺고 있는 것인가? 기억과 망각의 사이에 집단기억의 역동성이 존재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1960~1970년대 이후 전 세계적으로 역사적 과거청산을 요구하는 개인과 단체가 늘어났으며, 정부와 사회지도층이 이런 요구에 응답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과거의 집단적 과오를 인정하는 경향이 전 세계로 확산되면서 내외부의 희생자에 대한 공식·비공식적 사과가 국내외 정치에서 중대한 요소가 되었다. 여기에는 집단기억을 중심으로 한 기억투쟁이 개입되어 있다. 그렇다면 집단기억이란 무엇인가?
제프리 올릭은 <기억의 지도>(강경이 옮김·옥당, 원제는 <The Politics of Regret>)에서 집단기억(Collective Memory)을 우선 집합기억(Collected Memory)과 구분한다. 집합기억이란 집단 구성원 개개인의 기억을 수집한 것이고, 집단기억은 개인적이거나 집합적인 심리학적 접근이 아닌 집단적 접근을 통한 기억을 말한다. 집단기억 논의에서는 기억행위의 본질이 집단적이라는 사실을 강조하며, 기억을 통해 공동체가 구성된다고 하는 점, 곧 기억의 구성적 서사를 강조한다. 따라서 집단기억은 단일하고 합의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직접적으로 재현될 수 있는 실체가 아니라고 본다. 집단기억은 독립적인 기억이 아니라 네트워크화된 기억이며, 따라서 집단적인 기억행위는 본질적으로 도덕명령이라는 차원과 긴밀히 연관되어 있음을 강조한다. 이에 올릭은 전 세계적으로 비교적 가까운 시기에 새로이 등장한 ‘정치적 정당화의 원칙’을 ‘후회의 정치(The Politics of Regret)’라고 명명한다. 후회의 정치라는 표현 속에는 과거지향적 실천의 여러 장르인 사과와 보상, 그리고 형사소송 등 다양한 행위가 포함되어 있다. 물론 이런 실천의 내용은 모두 다르고, 또 각각의 형식은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올릭은 그런 실천들을 크게 두 가지 틀로 나누었다. 하나는 ‘보편적 인권’ 개념을 중심으로 한 철학·법학 담론이고, 다른 하나는 이행론(transitology)이라고 불리는 비교정치학 연구이다. 그러나 이 두 가지 이론적 접근은 모두 부적절하다고 주장한다. 대신 올릭은 책임윤리에 기반한 ‘후회의 정치’를 그 대안으로 내세운다. 여기에는 집단기억의 역사성과 공공성을 회복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점도 강조한다. 이처럼 올릭에게 ‘집단적 기억행위’와 ‘후회의 정치’는 서로를 규정하는 방식으로 구성되는, 상호의존적인 대상이다. 한국에서도 길게 보면 1990년대 초 민간정부가 들어선 이후에 과거청산 논의가 시작되어, 노무현 정부 시기에 집중적으로 과거청산 작업이 실시되었다. 과거청산은 법적·사회적 정의를 회복하고 올바른 국민도덕을 수립하기 위해, 그에 수반되는 부작용을 무릅쓰고라도 추진되어야 하는 것으로 강변되었다. 신념윤리와 책임윤리를 가르는 베버의 논의에 따르자면, 한국에서의 이런 ‘주류적’ 과거청산 논의는 신념윤리에 근거한 ‘후회의 정치’로서, 전근대적인 잔재에 지나지 않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또한 과거청산 논의의 기반을 이루는 신념윤리는 지나치게 실체적이고 재현가능하며 독자적인 집단기억에 기초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다면 신념윤리가 아니라 책임윤리에 기반한, 다시 말해 윤리적으로 책임 있는 ‘후회의 정치’가 있을 수 있을 것인가? 올릭은 “보복을 위한 보복이 아니라, 앎과 인정이 이룬 조화 속에서, 희생자와 가해자가 아닌 그 자손들 사이에 화해의 토대를 쌓을 수” 있을 때 ‘기억과 권력이 동의어’가 되는 그런 책임 있는 정치가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말 그대로 ‘진실과 화해를 통한 책임정치’를 ‘과거청산’을 통해 구현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윤해동ㅣ한양대 비교역사문화연구소 교수 원문 출처: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302221959405&code=90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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