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평화와 전쟁을 오가는 일본의 진자운동
윤해동 | 한양대 비교역사문화연구소 교수
1941년 12월7일 밤, 일본 총리의 관저 별관 집무실에서는 한 남자가 울고 있었다. 그 남자는 이불 위에 반듯이 앉아서, 눈물을 닦을 생각도 하지 않고 통곡하였다. 그 날은 일본이 하와이의 진주만을 공습함으로써 미국과 개전하기 하루 전날이었고, 울고 있던 남자는 육군상을 겸직하면서 전쟁에 관해 전권을 휘두르고 있던 당시의 총리 도조 히데키였다.
겉으로는 근엄하고 냉혹한 자세를 유지하던 도조 히데키라는 인간의 ‘맨얼굴’을 처음으로 드러낸 사람은, 아직도 일본에서 현역으로 활동하고 있는 호사카 마사야스라는 논픽션 저널리스트다.
이런 도조의 ‘눈물’을 호사카는 1979년에 쓴 <도조 히데키와 천황의 시대>(페이퍼로드)에서 ‘대일본제국’의 확대되고 있던 ‘모순’을 청산할 숙명을 가진, 곧 ‘청산인’이 흘려야 할 눈물이었다고 해석했다. 그 ‘모순’이란 야마가타 아리토모 등 군벌이 ‘통수권’이라는 무책임한 권능을 이용하여 만들어낸 것이었다. 그럼에도 군사내각의 총리였던 도조는, ‘천황친정’이라는 추상의 세계로 도망쳐서 소심한 지도자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을 뿐이었다. 도조의 마음속은 일본의 ‘국체’를 등에 지고 있다는 무거운 책임감과 함께 다가올 파국에의 공포감이 뒤섞여서 혼란스러웠던 것이다.
호사카가 본 도조는 정치와 군사의 관계에 대해 무지했고, 국제법규에도 거의 관심을 갖지 않았으며, 국가를 병영으로 바꾸고 국민을 군인으로 만드는 것을 자신의 신념으로 여기고 있던, ‘너무나도 보잘것없는’ 인물이었다. 그런데 왜 이런 지도자가 한 시대와 역사를 움직이고 있었던 것인가?
요컨대 호사카는 도조를 ‘보통명사’에서 ‘고유명사’로 되돌려 놓고, 이를 통해 도조의 성격과 그가 한 일을 명확하게 구분하는 것을 자신의 목표로 삼았다. 도조가 천황제 국가 일본의 부정적인 측면을 혼자서 짊어지게 해서는 안되며, 도조와 육군의 중심인물을 처단함으로써 전후민주주의가 완성되었다고 해서도 안된다는 통렬한 지적인 것이다.
그런 점에서 호사카의 이 책은 도조가 살았던 시대의 정치사 혹은 통사로 읽을 수 있다. 그럼에도 그의 시야 속으로도 식민지는 결코 들어오지 않았다. 도조가 벌인 총력전에 인적·물적으로 총동원되고 있었던 식민지의 존재가 분석의 대상이 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그의 시도는 결코 온전할 수 없다.
한편 2013년 들어 아베 신조 자민당 정권은 ‘잃어버린 20년’을 회복하기 위하여 경제의 ‘양적 완화’ 정책을 적극 추진함과 아울러, 주변국에 대한 공세적 태도를 평화헌법의 개정으로 연결시키려는 제스처를 취하고 있어, 전 세계인의 우려를 사고 있는 중이다.
과연 일본의 전후민주주의가 이룩한 성과는 허망하게 무너지고 말 것인가? 호사카는 비판적 저널리스트의 날카로운 시각으로 결코 그렇게 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국민국가론’으로 유명한 니시카와 나가오 교수는 근대 일본이 ‘구화(歐化=서구화)와 회귀(回歸=일본화)’라는 진자운동을 해왔다고 지적한 바 있다. 내게는 전후 일본의 행로 역시 평화와 전쟁 사이에서, 혹은 공격과 방어 사이에서 진자운동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또 그 진자운동은 어쩌면 도조라는 인물을 고유명사로 되돌릴 수 있을 때 멈추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