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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보도] [경향신문 2013.11.05][역사교과서 논란, 무엇이 문제인가] 청와대·국회·사법부 ‘역사개입’ 안돼… 학계서 논쟁하고 정리해야 | |
[역사교과서 논란, 무엇이 문제인가]
청와대·국회·사법부 ‘역사개입’ 안돼… 학계서 논쟁하고 정리해야
ㆍ(3) 전문가의 해법과 제언
“교학사 교과서 문제 때문에 역사학계 전반이 상처를 입었습니다. 한국 사회는 물론 한국 정치가 학문 고유의 영역을 가벼이 여기는 현실을 여실히 보여준 사태입니다.” 김정인 춘천교대 사회과교육과 교수는 교과서 논란의 해법을 묻자 정치 문제부터 거론했다. 김 교수는 “새누리당 의원들은 교학사 교과서를 일방으로 옹호했다는데, ‘사실’을 읽어보면 절대 할 수 없는 말들이 많다”며 “역사학계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교과서를 쓰고, 역사교육을 한다는 기본 인식 없이 역사교육을 정쟁화했다”고 말했다. 역사학자와 지식인들이 교학사 교과서 문제로 빚어진 논란의 해법과 대안으로 우선 제시한 것은 역사학계와 교육현장의 자율 논의다. 정권이 바뀌면 교과서 내용도 달라져야 하는 현실을 지적하는 목소리들이 컸다. 김정인 교수는 “정치인들이 교과서 문제를 더 이상 정쟁에 끌어들이지 말아야 한다. 역사학계 스스로가 중심에 서서 정리하고, 수습할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그것은 야당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 정권 바뀔 때마다 내용 변경
잡음 유발 세력들 경계 필요
▲ 자기와 반대 땐 ‘좌빨’ 매도 극우·수구의 여론전이 문제 공론화 거친 사관 정립 절실 임지현 한양대 사학과 교수는 좌우 양쪽의 교과서 문제를 통틀어 비판하는 학자다. 그럼에도 이번 교학사 교과서 논란을 두고 “역사학계에서 잘 알지도 못하던 이들이 하루아침에 전국적인 역사가가 되어버렸다. 시류에 맞춰 입맛에 맞게 역사를 서술하고, 잡음을 일으키는 이들을 경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임 교수는 대통령이 나서서 국사의 ‘수능 필수과목화’를 공론화하고, 여야 국회의원들이 차례로 등장해서 서로 다른 국사 교과서를 옹호하거나 비판하면서 역사가 희화화되는 현실이 불편하다고 털어놓았다. 임 교수는 청와대나 국회, 사법부가 역사에 개입해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홀로코스트를 부정한 영국 역사학자 데이비드 어빙이 오스트리아 법원으로부터 실형을 선고받은 적이 있습니다. 어빙을 강하게 비판하고, 그와 논쟁했던 역사학자 데보라 립스타트는 형사처벌을 해선 안된다는 성명에 사인을 했어요.” 시간이 오래 걸려도 학계에서 논쟁하고, 정리해야 한다는 말이다. 임 교수는 “지금 논점은 교과서의 선택권을 누가 갖느냐는 문제인데, 청와대, 교육부, 정치인이 교과서를 고치라 마라 하는 현실은 우습다. 역사 서술 자체가 객관적일 수 없어도 공집합 부분은 있다. 현장의 역사 교사가 검토하고 채택하면 된다. 학자들도 그 과정에 참여해 논쟁을 벌이면 된다”고 말했다. 그는 “상대방의 정치적 입장에 공감하지는 않지만 그 입장에 서서 내재적으로 역사적 논리가 타당한가를 검증해야 한다”고도 했다. 안병욱 가톨릭대 명예교수는 교학사 교과서 논란을 이렇게 진단했다. “자기와 반대되는 사람들의 90%가 ‘좌빨’이라며 학자 대부분이 이룬 학문 성과를 터무니 없이 매도하고 있다. 지금 권력층이 역사 교육을 흔드는 이유는 유신이념으로 국민이념을 오도하고, 그 기초 위에서 차기 집권, 장기 집권의 도구로 활용하려 하기 때문이다.” 안 교수는 “독일에 히틀러를 찬양하는 신나치가 있는 것처럼 통용될 수 없는 극단적 주장이 있는 게 인간 사회여서 이는 피할 수 없는 것”이라며 “건전한 상식을 바탕으로 대다수의 중심 여론이 그런 극단적인 사고를 통제하거나 제어할 수 있어야 하는데, 현재 한국사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일은 극우·수구 여론이 사회 여론의 중심축으로 들어와 있는 게 문제”라고 했다. 안 교수는 당장 해법을 내기 쉽지 않다고 했다. 그는 시민사회의 비판과 문제 제기, 여론의 환기가 현재 가능한 최소한의 대안이라고 밝혔다. 안 교수는 “권력이 역사 교육을 자기들 색깔에 맞춰서 날조하거나 왜곡하려는 정책을 펼치면 시민사회 차원에서 대응할 방법은 없다. 다만 터무니없는 역사 왜곡, 훼손, 편견, 무지를 지적하고, 부당하다는 여론을 환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가 강경한 정책을 펴더라도 역사연구는 시간이 흐를수록 진실에 가까워지기 마련”이라며 “권력의 일방 주장 때문에 사람들이 헷갈려 해도 진실과 사실에 입각하지 않은 이야기는 오래갈 수 없다”고 했다. 신용옥 ‘내일을 여는 역사’ 편집장은 “장기적 안목에서 외국의 역사 교과서 발행 제도를 총체적으로, 우리 현실에 맞게 논의하는 것을 출발점으로 삼을 수 있다”고 말했다. 보수 진영에서 국정 교과서 회귀를 제기한 지금 검인정제 강화, 자유발행제 도입과 함께 국사편찬위원회를 대체할 독립 기관 설립 같은 대안이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대해 신 편집장은 “보수나 정부 입장에서 좌편향 교과서를 없애려면 국정 교과서가 제일 손쉽다. 자유발행제로 가면 현재로선 좌편향 교과서가 더 많이 나올 것이라고 여길 것이다. 진보 쪽도 자유발행제 도입이 교학사 교과서를 인정하는 꼴이 돼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국사편찬위원회는 편찬이라는 본연의 일에 전념하고, 다른 객관적 기관을 만들자는 논의도 나오지만, 독립성을 어떻게 보장할지 같은 구체적인 대안을 마련해야 하는 문제가 있다. 여야가 합의해 만들 수도 없는 노릇 아니냐”고 말했다. 신 편집장은 공론화 과정을 거친 사관의 정립을 강조했다. “교학사 교과서도 하나의 사관이라고 인정하자는 이야기도 있다. 이영훈 교수 등의 <대안 교과서 한국 근·현대사>는 일관된 논리라도 있었지만, 지금 교학사 교과서는 그것마저 없다. 연구 단위에서 합의하고, 공론화한 과정이 빠져 있는 사관은 사관이랄 것도 없다. 학자들이 재미나 장난으로 연구나 발표를 하는 게 아니지 않나.” 학계와 현장의 논의를 강조한 신 편집장은 “공론화해서 합의점을 도출하는 과정에서 목차나 항목 같은 검정 기준도 형성된다. 그런 공론 과정을 거쳐야 다른 식의 사관도 생겨날 수 있다”고 말했다.
윤해동 한양대 비교역사문화연구소 교수는 한국사에 새로운 첨예한 역사를 반영하기 힘들다는 점에서 국정과 검정 교과서의 차이가 없다고 보는 편이다. 윤 교수는 “긴 안목으로 볼 때 자유발행제를 하든가 또는 교육자치를 병행해 지자체가 역사 교육을 책임지는 쪽으로 가는 게 낫다고 본다”고 말했다. 윤 교수는 “현재 교육부는 너무 정파적”이라며 “정권 교체에 상관 없이 장기 역사 교육 계획을 짤 수 있는 국가 교육위원회를 만들어야 한다. 이런 식의 제도 개혁으로 가야 역사 교과서 문제의 실타래를 풀 수 있다”고 말했다. (김종목·박은하 기자 jom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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